제주신문
오피니언제주에세이
속긋 없이 그리는 그림
정영자  |  수필가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4.01.08  16:31:0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손녀가 무언가를 그린다. 

   
 

 
 손아귀에 색연필을 꼭 쥐고서 작은 동그라미를 정중앙에 먼저 그린다. 이어서 느낌표 모양의 꽃잎을 하나하나 빙 둘러 촘촘히 그려 넣는다. 꽃의 중심인 둥근 원은 노란색으로 꽃잎은 하얗게 칠한다.  
 

 “바탕색이랑 꽃잎 색이 비슷해서 꽃인 줄 모르겠는데?”라고 하자 이렇게 그릴 거라며 하얀 꽃잎에 검은색으로 라인을 그려 넣는다. 비로소 꽃의 형체가 잡히며 피어난다. 검은 선이 꽃의 모양을 잡아준다는 걸 어디서 배웠을까. 맞벌이 부모는 시간에 쫓겨서 그림까지 꼼꼼하게 가르쳐 줄 여유가 없을 터였다. 아이 스스로 어디선가 보고 따라 하고 있을 것이었지만 색연필을 쥔 품새처럼 그림이 앙증맞다. 
 
 손에 무얼 잡기 시작하자 연필을 잡고 북 북 그려대던 무수한 선들을 아이는 기억할까. 손이 가는 데로 그리던 선이 시간이 흐르면서 강아지, 토끼, 꽃으로 변화해 갔다. 아무런 안내선도 없는 백지 위를 아이는 선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데 거침없다. 아이가 그리는 선을 따라가다 보면 흘러가는 구름도 있고 잔잔한 겨울 바다의 물결도 밤하늘에 나온 반달도 만난다. 아이의 그림이지만 구름은 어떤 의미를 띠며 형상을 이루고, 물결도 설레는 듯 일렁이며 하얀 반달은 길을 안내하는 듯하다.
 
 누구의 간섭도 없는 아이만의 세계는 오로지 그 아이만의 상상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을 더듬으며 습득해 가는 과정을 보는 게 흥미로우면서도 기특하기만 하다. 글씨나 그림 따위를 따라서 쓰거나 그리며 배우고 익히도록 가늘고 흐리게 그어 주는 선을 속긋이라 하는데, 이 아이에게 그것은 상상력 외에는 달리 없을 듯싶다.
 
 하얀 스케치북에 나름대로 그린 그림은 순진한 상상력에서 나온 저 애의 마음이다. 수채화나 유화가 그려진 어른의 캔버스를 어찌 내 손녀의 저 스케치북에 견줄 수 있을까.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이 없이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한 이는 예수였다. 우리의 삶에서 겪는 혼돈은 어쩌면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을 더럽히면서 맞는 불상사일지도 모른다.
 
 마음대로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꽃이 되고 새가 되고 나무가 되는 그림을 보면서, 이 아이가 살아갈 앞길에 속긋 하나 넣어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나의 초등생 시절, 국어 교과서는 한글 옆에 괄호를 쳐서 한자를 넣어 배우도록 꾸며졌다. 그 한자를 읽고 쓰려면 복습만이 길이었다. 한자 쓰기 노트가 있었는데 원고지처럼 반듯한 정사각형의 틀 안에 점선으로 한자의 획이 그려져 있었다. 그 점선을 따라 그리는 게 한자 공부의 시작이었다. 쓰는 게 아니고 베끼는 과정인 점선을 따라 그리면서 한자 획의 순서를 알았고 그 뜻을 깨우쳐 갔다. 
 
 손녀의 그림 그리는 것을 보다 초등학생 때 한자 공부하던 게 설핏 떠올랐다. 내 인생의 속긋은 무엇이었을까. ‘속긋’없이 그려온 내 삶이 저 모습들에 비유되며 문득 다가섰다. 점점이 그려 넣은 속긋 같은 길 하나 있었다면 사는 게 수월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 나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속긋 없이 막막하게 그림 그리듯 살아왔어도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내 손녀의 그림처럼 속긋 없이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림이지만, 거기엔 명암과 원근이 적절하게 조형돼 있다. 거장의 그림을 흉내 내려고도 하지 않은 채 고집 하나로 그려왔다.
 
 그러고 보니 점선 하나 없던 도화지에 나는 막막하게 그림을 그려온 셈이다. 나의 삶도 어둠은 무서웠고 새벽은 설레었다. 내가 가는 길이 때로는 못마땅하고 살고 있는 삶이 막막할 때가 많았어도 믿었다. 그 그림은 서툴고 자랑거리로 내놓지는 못하지만, 반듯하게 그려온 나만의 그림이다,
 
 새해가 오는 길목에 서서 이리저리 헤맨다. 매해 이맘때면 나타나는 쓸쓸하고 아쉬운 추억들은 내 사유의 뜰에 불꽃의 심지를 돋운다. 해를 보내고 맞는 자의 마음이 왜 이리 혼란스러워야 하는지…. 칠십이라는 고비를 넘기 때문인가. 달팽이 지나간 흔적처럼 마음에 무늬로 그려진 숱한 사연들이 지난 세월을 반추하게 한다. 생전에 야단치며 나를 가르쳤던 부모님의 목소리도 이 시점에서 다시 듣는다. 
 
 손녀의 그림을 다시 본다. 이 아이가 그려내는 손끝에서, 속긋 없이 그려내는 스케치북 속에서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 속긋 없이 그리는 그림, 한 송이 꽃이 피어나고 구름이 춤추고 바다가 일렁이는 내 손녀의 그림이 우리의 삶이 아니냐고 묻고 있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고충처리인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63113)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공로 9-1(도두일동)  |  대표전화 : 064)744-7220  |  팩스 : 064)744-7226
법인명: ㈜제주신문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제주 아 01014   |  등록일 : 2007년 10월 24일  |  대표이사:전아람  |   발행인:전아람
편집인:전아람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아람
Copyright 2011 제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ejupress@jejupr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