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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밥상
정영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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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2.05  17:2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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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금치나물 한 접시, 된장국 한 대접, 미역무침에 멸치볶음, 콩을 넣은 밥 한 공기. 오늘 저녁 나의 밥상 차림이다. 밖에서 지인들이랑 먹는 날이 많아 어쩌다 혼자 먹는 저녁이지만, 시장에 나가 찬거리를 고르고 사는 일에서부터 신경을 쓴다. 
 시장바닥에 좌판을 펼치고 나물 몇 가지 놓고 파는 노파를 찾아간다. 노파는 한기가 도는지 털모자를 쓰고도 잔뜩 웅크렸다. 뿌리에 흙이 묻어있고 누런 잎도 서너 개 붙어있는 밭에서 캐 온 그대로인 작달막하고 못생긴 채소들이 진열되어 있다. 들판에서 캔 꿩마농과 우영팟에서 막물로 캐낸 몽그라진 시금치나 무도 있다. 자주 가지는 않으나 이왕이면 제주할망 것을 산다는 믿음은 노파의 손으로 내게 전해지는 웅축된 사계절의 기운을 느끼는 까닭이다.
 골라놓은 채소는 서너 번은 족히 재활용했을 꼬깃꼬깃 구겨진 비닐봉지에 담아 준다. 노파의 삶이 서려 있는듯한 거칠고 굵은 손에서 그녀의 억척스러운 삶이 보인다.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나이테를 읽어내고는 내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저 노파의 하루가 돈을 위한 것만은 아닐 텐데…. 나이 들어서도 내 뿜는 혹은 내 뿜어야 하는 삶의 의욕과 그 나이에서 느낄 행복의 쳇바퀴를 돌리는 듯해 어딘지 혼란스럽다. 나도 이제 노을의 빛을 더듬으며 걸어가고 있으니까.

 시금치 뿌리에 묻은 흙을 살살 털어내고 누런 겉잎을 떼어내고 포기를 나누면서 씻는다. 시들시들했다가도 물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초록은 포기하지 못하는 유혹이다. 봄기운을 품은 꿩마농도 줄기줄기 다듬고, 미역은 찬물을 갈아가며 야무지게 주무르면 소금기가 거품으로 빠져나온다. 맛을 좌우하는 비결은 정성이다. 가끔 이런 과정이 귀찮으나 억지로라도 이러한 과정을 즐기려고 한다. 먹는다는 것이 생존에만 국한되던 한때가 있었기에 나의 이런 행동은 보상 심리라 해두자.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식탁을 차리던 때가 있었다. 삼시세끼를 무얼 차리면 그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될까를 생각하며 메뉴를 정하고 음식을 만들었다.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차려 놓은 음식을 맛나게 먹는 그 모습에 자기만족 같은 행복을 즐기면서. 
 건강을 잃는 일은 순식간이었다. 고혈압과 당뇨가 있어 약을 먹었는데 오랫동안 꾸준히 먹은 그 약이 복병이었다. 병의 진행을 막으려고 먹은 약이 신장 기능을 떨어트리는 독이 될 줄 몰랐다. 서서히 기능을 상실해 간 신장은 결국 투석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소리 없이 다가온 충격은 상상하지 않았던 상황들을 끌고 왔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이제까지 먹어왔던 음식들을 다 바꾸어야 한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음식 맛을 알아버린 사람에겐 형벌과도 같다. 영양이 풍부한 채소들은 죄다 물에 담가 영양성분을 빼야 하고, 맛을 내던 소금은 위험한 재료가 된다. 여름날의 갈증을 달래주는 수박이며 참외, 붉게 익은 토마토, 비타민C가 가득한 키위 등등. 그가 좋아했지만 먹으면 독이 되었다. 먹는 게 즐거움이던 한때는 기억에서 지워야만 했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모든 걸 버리고 새로운 식단을 짜며 한숨이 났다.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고기나 생선을 먹어야 하는데 간이 안 된 고기가 입에 맞을 리가 없었다. 그 고충을 해소할 방법을 알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삶고 찌고 굽고 튀겨 보지만, 마지막 묘법인 한 방울 소금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투석한 지 삼 년을 갖은 정성에도 점점 야위어만 가는 그를 일으켜 세울 묘약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은 오고 나는 쌀을 씻어 안친다. 휑한 눈을 뜨고 냉장고 문을 열어./
 
 /푹 삭은 배추김치를 꺼낸다. 삭히려고 삭힌 게 아닌 김치는 그간의 시간을 냄새로 말한다./ 
 
 /꿈틀대는 허한 식욕. 밥 익는 냄새. 거룩하달 수밖에 없는 삶의 냄새.’/
 
 그이를 보내고 맞는 첫날 아침에 내가 차린 밥상은 신김치 한 접시와 밥 한 공기였다. 지나간 일기장 속에 있던 ‘그날’을 다시 읽었다. 내 앞에 놓였던 김치와 밥 한 그릇. 그이가 없는 집에 혼자서 마주한 밥상은 살기 위한 것이었던가, 그를 애도하기 위한 나의 발버둥이였을까.
 
 그를 보내고 한동안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린다는 행위가 마뜩하지 않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걸로 가려가며 맘껏 먹을 수 있는데도 그의 생을 이어가기 위해 차려야 했던 야속한 밥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하지만 어느새 망각은 저 기억의 굴레를 벗겨낸다. 저녁 밥상에 정갈하게 차린 찬들이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입맛을 당긴다. 숟가락을 든다.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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