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7월 4일, 이른 아침이었다. 고등학교 정문통과는 하급생에게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지만, 교정에 들어서자마자 운동장 한구석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있는 무리에 끼어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한국 복싱?밴턴급의 강자 홍수환 선수가 남아공 제 3 도시인 더반에서 아놀드 테일러와 WBA (세계복싱협회) 밴턴급 타이틀 매치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어지간한 스포츠중계는 대부분 라디오 중계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링 위에서 벌어지는 혈투를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경기에서 홍수환은 몇 번의 다운을 빼앗는 일방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15회 종료와 함께?심판전원일치의 판정승을 거두었다. 함성이 울려 퍼졌다. 경기가 끝난 뒤 홍수환은 라디오를 통해 중계된 국제통화를 통해 "엄마, 나 챔패언 먹었어!"라는 훗날 전설이 되어버린 유명한 말을 했었고, 그 어머니 역시 "장하다. 대한민국 만세다!"하고 응수했다. 평소 독랄하기로 유명했던 영어 선생님은 그날따라 유머도 석어 가면서 즐겁게 영어 수업을 진행했었다. 당수 유단자였던 영어 선생님은 평소 교실 안에서도 당수실력을 뽐냈었기 때문에 영어 시간은 가히 공포의 시간이었던지라 홍수환의 승리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른다. 이것이 남아공 더반이 우리와 맺은 첫 번째 인연이었다. 그 후 2010년 여름, 남아공 월드컵 때도 더반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당시 B조 2차전까지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던 우리는 6월 23일, 더반에서 나이지리아와 조별 마지막 경기를 벌이게 되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2-2로 비겨 자국이 아닌 원정지에서 자력으로 첫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남아공 월드컵16강 ?자력진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올 2011년 7월, 7일 영시 15분, 약속의 땅 더반에서 다시 한 번 기적이 일어났다. 쟈크 로케 국제올림픽위원장(I.O.C)위원장이 예정 시간보다 십분 늦게 나타나 갖은 애를 태운 끝에 봉투에 든 종이를 펼쳐들고 평창을 선언했다. 온 나라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 무려 십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얻어진 값진 승리였다. 1차 투표가 끝나고 소식통인 유럽의 기자들이 한국기자들을 찾아와 악수를 건넬 무렵 이미 승부는 결정 난 거였지만, 절대과반수(absolute majority)라는 말이 현장에 흘러 다녔다지만,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다. 결과는 싱겁게도 63(평창)-25(뮌헨)-6(앙시)이었다. 올림픽 유치경쟁은 흔히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되곤 한다. 안방에서 소식만 기다리는 우리가 이토록 애가 탄다면 현장에서 뛰는 책임자들의 고초는 말할 나위없을 것이다. 어느 누가 일등 공신이 아니겠는가? 모두가 일등 공신이다.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발표)도 무난했다는 평가다. 이미 새로운 스타가 되어버린 미모의 나승연 대변인이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멤버와 슬로건을 소개하고 스타트를 끊자, 조양호 유치위원장이 세 번째 올림픽을 도전하는 평창의 열정을 피력하며 휴머니티를 자극했다. 그러자 셀러리 맨의 신화를 이룩해 한국 보다는 해외에서 더 알아주는?이명박 대통령이 투박한 경상도식 영어로 개최성공에 대한 약속을 했다. 한국에서 모를 뿐 M.B는 해외에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뒤이어 김진선 특임대사가 경기장 배치 소개 및 개최에 대한 자신감을 표명했으며,?이날의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김연아가 그동안 갈고 닦은 영어 실력으로 "젊은 한국선수의 꿈과 "drive the dream"?프로그램을 소개해 만장의 박수를 받았고, 문대성 I.O.C위원과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을 뒤이어 미국입양아인 토비 도손이 평창의 잠재력과 본인 성장담을 통한 희망이야기를 해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나승연 대변인이 아시아 개최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비록 프리젠테이션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이건희 회장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승리가 확정지어졌을 때 평소 무뚝뚝하기로 정평이 난 이 회장이 보여준 눈물은 시위전문가들이 삭발식을 하며 보여준 전시용 눈물에 냉소를 보이던 전 국민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김연아의 눈물은 또 어떤가? 그보다 더 아름다운 눈물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오직 조국의 명예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어린 선수에 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눈물이라고 다 똑같은 눈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