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월대보름이 지났다. 어릴 적 깡통을 돌리기 위해 귀한 깡통을 주워 몇 개월씩 보관했다가 정월대보름날 저녁에 불을 살려 돌리고 다녔던 기억은 40대 이상의 사람이라면 누구든 경험을 했을 것 같다. 깡통을 돌리러 가고 싶은데 우리는 초저녁부터 갈 수는 없었다. 보름달이 떠오르기 까지 기다려야 했다. 보름달이 동쪽 큰 산위에 떠오르면 미리 아버지께서 만들어놓으신 관솔불을 들고 기도를 올렸다. 관솔불은 싸릿가지를 쪼개 관솔을 끼우고 칡으로 촘촘히 동여맨다. 그리고 싸가지 대에는 아이들의 나이만큼 꽃을 새겨 넣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머리 위에 나이만큼 불을 돌리고 “달님 달님 절합니다. 우리 순진이 그저 부스럼 앓지 않게 해주시고, 공부 잘 하게 해주시고, 무럭무럭 자라게 해주시고, 무병무탈하게 해주십소사.”라는 주문을 외우신다. 그 의식이 끝나면 우리는 불똥에 잘 타는 다우다잠바를 벗고 골덴잠바로 갈아입고 불깡통을 돌리러 논으로 나갔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정월대보름은 우리 민족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준다. 정월대보름에 오곡밥을 먹는 풍속은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지왕이 정월대보름날 경주 남산기슭의 천천정(天泉亭)이라는 정자로 행차를 하는 중에 갑자기 까마귀가 날아와서 봉투 하나를 떨어뜨리고 날아갔다. 신하들이 주워서 봤더니 겉면에 ‘이걸 뜯어보면 두 명이 죽고, 안보면 한 명이 죽는다’고 쓰여 있었다. 이 글을 보고 한참 고민하고 있으려니 한 신하가 한 명은 왕을 일컫는 것이라고 주장을 해서 열어보았다. 안에는 ‘당장 궁중으로 돌아가서 내전 별방에 있는 금갑을 쏘시오’ 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바로 궁으로 돌아가서 금갑에 대고 활을 쏘았더니 왕비와 한 신하가 나왔다. 심문을 했더니 둘이서 역모를 꾀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왕은 둘을 처형하고, 목숨을 살려준 까마귀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매년 1월 15일을 까마귀의 제삿날(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귀한 재료를 넣은 검은 밥, 즉 약밥을 지어서 제물로 바쳤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