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우 칼럼니스트/소설가.

그는 1985년 12월 조국 대한민국과 귀화했던 나라 독일마저 버리고 북한에 입북했다. 그 후 1년만인 86년 11월 형극의 땅에 처자식을 남겨두고 홀로 탈출, 92년 5월 대한민국에 귀순한 입북간첩이다. 탈출 후 5년간 독일에 머물며 요덕수용소에 갇힌 처자식을 구출하려 백방으로 노력을 했으나 실패하고,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대한민국의 문을 두드린 사람이다. 1년 남짓 머무른 북한에서의 그의 직책은 한국 내 주사파를 비롯한 친북좌파들의 사상교육과 반정부투쟁선동에 지침을 제공하던 통일선전부 산하 칠보산연락소에서 운영하던 ‘구국의 소리방송’ 방송요원이었다. 당시 그의 가명은 ‘민영훈’이었다. 대남선전방송인 ‘구국의 소리방송’에는 그 말고도 거물간첩 윤이상과 송두율. 김종한의 꼬임에 넘어가 입북했거나 혹은 납북된 남한출신들이 각각 가명으로 죽지 못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가명은 북北이 그들에게 베풀어준 유일한 배려였다. 또한 인간일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성과 그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에게 마지막 도리만은 지키게 해준 유일한 은혜였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혀를 깨물고 자진할 사람 적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그에게 악마를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보았다!’고 답할 것이다. 북한에서 윤이상은 오씨 같은 하급간첩은 범접도 못할 높은 신분이었다고 한다. 당시 김씨 부자와 직통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평양순안공항 입국심사대에서도 윤이상은 검열 없이 그냥 통과될 정도로 그 위세가 막강했다. 17번이나 들락거린 거물간첩이다. 훗날 김씨 부자가 윤이상과 그 가족에게 하사한 호화주택만 보더라도 윤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증명되었다. 그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쌓인 게 아니었다. 북한지도부는 초청보다 납치를 선호하는 이상한 집단인데, 알고 보면 납치가 초청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초청은 기껏해야 왕복비행기 표만 지불하면 되지만 요원이 직접 가서 현지에서 체류하며 납치를 해오려면 몇 십 배의 돈이 들어간다. 결국 D.N.A속에 흐르는 독랄한 근성이 그들로 하여금 납치를 선호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납치는 국제적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유럽에 고정간첩을 심어놓고 포섭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윤이상과 송두율이 바로 그 연결고리를 했다. 이를 증명하는 북한 측 자료가 방대하다. 정말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독일시절로 돌아가 아내와 두 딸에게 사죄하고 남은 생을 바치고 싶을 것이다. 탈출 후 지금까지 단 하루라도 단잠을 잔 날이 어찌 있을 것인가? 며칠 전 그의 아내가 죽었다는 북측의 통보가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사실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랴! 어쨌거나 그는 천추의 죄인이다. 벌써 26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북한 영공을 벗어나던 그 살 떨리는 순간을 아직도 그는 생생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윤이상 같은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아내는 그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자기밖에 모르고 조금만 못마땅해도 이혼을 들먹이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살신성인이 또 어디 있겠는가? 독일 정부를 통해 자신들의 구출시도를 하되 석 달 안에 못 빼내면 죽을 줄로 알라고 다그쳤다는 아내 신숙자는 신사임당에 버금가는 훌륭한 아내이다. 그가 탈출하고 난후 아내와 두 딸이 겪었을 공포가 어떠했을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할 것이다. 수천 년 내려오던 보릿고개를 모면케 해주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박정희를 탓하고, 온 세계가 손가락질한 김일성왕조를 택한 원죄치고는 너무나 가혹하다. 철없는 학생이라면 몰라도 소위 박사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으니 그 어느 단어로도 그의 어리석음을 대변할 방법이 없다. 단 한 번의 판단 착오가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참담히 느꼈을 것이다. 지금 통영에서 윤이상은 이순신을 넘어서는 영웅이다. 윤이상 밑에 들어간 국비와 지방비가 6백억이다. 신숙자의 죽음으로 인해 그 돈줄이 끊길까봐 똥줄이 타는 무리들이 오길남이 죽기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말 훌륭한 나라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