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진(고려대 평생교육원 강사)

풀뿌리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하는 지방자치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고장마다 그 고장 출신 성현이나 예술가 등 인물모시기에 난리다. 자연적인 환경은 그 고장을 알리고 즐기는 조건이 되지만 인물은 그 고장의 정신을 드높일 수 있는 더욱 좋은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전국 여러 군데에서 인물을 가지고 축제를 열고, 실제 그 축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됨으로써 그 고장을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은 것을 많이 보아왔다. 김포시의 중봉(조헌)문화제, 남양주시의 다산문화제, 영월군의 김삿갓 축제와 단종문화제, 진주시의 논개개천예술제, 부여군의 윤봉길문화축제, 완도군의 장보고 축제, 남원의 춘향제, 강진군의 영랑문학제 등이 그것이다. 그 고장에서 태어나거나 벼슬을 하던 분, 또는 유배된 분의 뜻을 널리 기리고 알림으로써 정신수양은 물론 관광자원으로써 소득에도 기여하자는 것이 지방자치제 수장들의 생각이다.
김삿갓으로 불리는 김병연은 양주군 회천면에서 태어났으나 강원도 영월로 숨어들었다가 김익순의 부정을 고발하는 시를 썼다가 할아버지라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워 갓을 깊이 눌러쓰고 방랑을 시작한 곳이라고 하여 영월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추사 김정희, 면암 최익현 등 정말 많은 분들이 유배되었지만 그런 분들의 이름으로 축제를 여는 것은 보지 못했다. 화가 이중섭 정도가 미술관을 갖추고 관광효과를 거두고 있을 뿐이다. 오언 장승업 같은 걸출한 화가는 제주도로 내려와 그림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지만 장승업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면암 최익현 선생은 제주에서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유배생활을 하면서 제주의 어린 유학들을 길러내는 한편 부모님과 자식, 친지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시를 짓는 등 학자와 시인으로서의 기개를 펼침으로서 제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안다. 특히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오지 마을 가시리에 정착한 한천 선생이 향약을 스스로 만들어 정하고 선비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쳐 성읍리 등 주위에 학덕이 크게 미쳤는데, 구한말 면암 최익현이 제주에 유배와 산야를 섭렵하던 중 고종 16년(1879), 가시리에 들렸을 때 한천 선생의 낙향사를 전해 듣고 직접 비문을 지어 당시의 학자 허갑(許鉀)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 등은 문화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제주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신 면암 최익현 선생을 모시는 향교나 사당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리고 그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제나 축제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은 전국에서 인물모시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마당에 정말 의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