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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예찬<김순진>
김순진  |  webmaster@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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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6.19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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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기야 논개의 정신이 이보다 더 붉으랴, 푸르기야 일송정 푸른 솔이 이보다 더 푸르랴! 찌는 듯한 여름을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푸른 바다에서의 해수욕일까? 소나무 숲속에서의 캠핑일까? 에어컨일까? 아이스크림일까? 지난날, 중학교에 다녀 온 까까머리 나에게 어머니는 등물을 해 주시고, 우물 속에 밧줄로 묶어 담가둔 수박을 달아 올려 쪼개어 내게 한 덩어리 떼어 주시며 ‘니가 우리집 기둥이여!’ 하셨지. 그 때 수박 맛은 에어컨을 씽씽 돌리며 앉아서 먹는 아이스크림 맛으로는 죽어도 못 당할 게다. 어머니는 인애하신 모습으로 사랑스런 아들이 수박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입가에 미소를 키워가곤 하셨지.
옛날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김시민 장군과 의병들이 왜놈들을 무찌르다 피가 땅에 배어서 지금도 수박 속이 빨간 것일까? 조헌 장군과 700여명의 의병들이 피 비린내 나는 전투로, 권율 장군이 아낙네들과 행주치마로 돌을 날라다 왜군을 무찔렀기 때문에, 6.25동란의 피 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핏물이 수박에 배어들어 속이 빨간 것일까?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에서 이겼을 때, 아마도 그 강의 핏물은 온 삼천리강토를 물들이고도 남았으리라. 어쩌면 우리 민족은 조상들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숭고한 정신으로 피를 통하여 나라를 수호하였기에 붉은색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축구를 응원하는 공식 응원단의 붉은 악마라는 명칭도, 그리고 붉은 유니폼을 좋아하는 국가 대표 축구 선수들도 어쩌면 수박에 배어있는 민족혼과 일맥상통하는지 모를 일이다.
달기는 왜 단것일까? 옛날얘기 속에 나오는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다가 엄마를 잡아먹고, 철이와 순이마저 잡아먹으려 할 때, 미루나무 위로 올라 새 밧줄을 하늘로 올라가 철이는 해가 되고 순이는 달이 되었는데, 호랑이는 썩은 밧줄을 타고 올라가다 사탕수수 밭에 떨어져 수수깡에 피가 묻어 빨갛게 되었고, 수수깡의 단맛이 수박에 배어 속이 빨갛고 달게 되었다나 뭐라나?
그러면, 수박껍질이 퍼렇고 검은 줄이 있을까? 옛날, 농부가 원래는 평지에 있는 논이나 밭에 수박을 심었는데, 어찌나 아이들이 서리를 많이 해 먹는지 당해낼 재간이 없어서, 그 농부는 궁리 끝에 수박을 소나무 숲이 있는 산과 산 사이에다 잘 보이지 않도록 심었더니 수박 껍질에 물이 들었는데, 그것이 무등산 수박이요, 고창 산 수박의 원조라나 뭐라나?

여름철 과일은 뭐니 뭐니 해도 수박이 대장이다. 복숭아, 자두, 참외, 포도 등 모두들 자신이 대장이라 하겠지만, 어떤 과일 가게고 수박이 진을 치고 앉아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덩치가 한 몫 하는 원인도 있으리라. 쪼잔한 자두, 복숭아, 살구 몇 알, 포도 몇 송이보다 수박 한 덩어리의 군림은 곽제우 장군이나 임경업 장군의 포효 같다. 또한 수박 한 덩어리를 쪼개어 놓으면 최소한 너댓 명 이상의 입이 즐겁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것은 어쩌면 상징성이리라. 비치볼을 수박 무늬로 하고 비키니 수영복을 수박 무늬로 하는 것은, 봄을 생각할 때 개나리와 병아리를 생각하고, 가을을 생각할 때 단풍과 귀뚜라미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리라.
찌는 듯한 뙤악볕 아래서 고추 밭에 풀을 매고 들어온 농부에게 시원한 수박 한 쪽을 건넨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리. 조기 축구 회원들이 건강한 육체로 한 여름 날 축구 시합을 하고난 뒤, 시원한 수박화채 한 그릇을 건넨다면, 그것은 정다움이라 말하리.
수박은 스스로 자부하며 말한다. ‘사랑을 전하는 데는 내가 최고다’라고. 친척집을 찾아 간다거나, 직장동료, 서먹한 관계에 있던 사람을 만나러갈 때, 수박 선물이 최고다. 왜냐하면 수박은 먹는 음식이기에, 음식을 앞에 놓고 싸울 수도 없고, 더욱이 수박을 먹으려면 입을 크게 벌려야 하기 때문에 입이 너털웃음을 웃는 모양이 되므로 절대 싸울 수가 없을 것이라고. 수박은 초등학교 2학년생이 스케치북에 그려놓은 그림에서처럼 녹색과 검은 줄이 선명한 것은 아마도 김지하 시인의 ‘풀’처럼 늘 저항하고픈 사명 때문이리라. 선명하게 검은 줄은 민중을 세우려 뿌리내린, 어쩌면 가슴 저리도록 아픈 긴 밤을 지세우고 난 이침 이슬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수박이 그 무더운 여름 위에 우뚝 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대양 육대주를 포함한 물과 껍질과 같은 지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구는 둥글고, 둥근 것은 모난 것의 스승이요, 우주 만물의 근본이라 하지 않던가? 이르노니, 수박은 모든 기하학의 근본인 구이기에 우리는 그 모습에 굴복한다. 수박의 정신은 둥근 구로서 세계를 감싸 안기 때문이요,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기 때문이요, 가장 중요함은 내면에 한민족의 붉디 붉은 민족혼과 피와 같은 사랑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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