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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의 제사<김순진>
김순진  |  webmaster@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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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7.16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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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가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만한 형편이 못되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기술을 배우라며 면 소재지의 대장간과 전기용접을 배우라며 공업사 등에 보내셨다. 나는 그런 힘들고 기름때 묻는 기술보다는 깨끗한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어느 날 서울 답십리에 사시는 작은아버지께서 취직자리가 났다며 올라오라 해서 자동차 부속품의 코일을 감고 프레스로 철판을 따는 공장에 취직하였다. 

기술을 배우는 일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공장에 내 일생을 바치기는 싫었다.
밤 열시에 잔업이 끝나면 나는 몰래 기계가 있는 기계실에 들어가 불을 켜놓고 진학공부를 하는 내게 공장식구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을 거쳐 부모님께는 말씀도 드리지 않고 포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진학시험을 쳤는데 성적이 좋았다. 아버지께서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시며 이모님 댁에 자식을 맡기러 가셨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모님 댁은 너무나도 큰 대가족이었다. 이모는 평강 채씨 집안에 시집온 후 첫 아이를 아들로 낳고 그 이후 딸 일곱을 낳으셨다. 그렇게 여덟 명의 자식과 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셔서 아이들에게 ‘장에 할머니’라 불리던 증조할머니와 사랑방에 계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이모님 내외분. 그렇게 모두 13명의 대가족속에 이질조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너, 이따위로 공부하려면 공부 그만두고 이 집에서 나가거라.” 살아오면서 그때처럼 무서운 호령은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다음 시험에는 훨씬 오른 성적표를 가져다 드리고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모님 부부 두 분은 매일같이 밤새도록 부추와 열무를 다듬고 강낭콩을 까고, 짚으로 달걀을 싸서 새벽 4시면 서는 포천 장에 내셨다. 이모부께는 아주 귀하 보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짐자전거다.
손잡이 양 옆을 서너 개의 철근으로 잇대어 때운 그 자전거는 넘어드리면 일어세우기도 힘들 만큼 무거운 자전거였다. 그 무겁고 큰 짐자전거에 밤새 손질하신 농작물을 큰 이불보퉁이에 싸 묶어 실으시고 새벽어둠을 뚫고 내달리는 이모부의 모습은 마치 임경업장군처럼 대단했다. 새벽시장에 물건을 내시고 나면 해장술 생각이 나셨을 것이다. 
그러기에 늘 나가실 땐 물건을 싣고 가셨지만 들어오실 땐 얼큰한 술 때문에 버스를 타고 들어오셨다. “순진아! 학교 끝나면 종점 옆에 자전거 타고 들어오너라.” 자전거를 타고 오는 건 늘 내 차지였다.
 
아들이 하나 밖에 없는 이모님은 당신들이 돌아가시면 상제가 하나 밖에 없는 것을 늘 걱정하고 계셨다.
그 때마다 나는 “걱정 마세요. 이모님! 제가 꼭 상제해 드릴게요.”하고 말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도 제 살길을 찾아 이모님 내외분 곁을 떠났고 이종사촌 누이들도 하나 둘 출가할 무렵 이모부께서 돌아가셨다. 그 슬픔은 정말 내게도 크게 다가왔다. 나는 약속대로 상복을 해 입고 상제의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또 10여년이 흘렀다.

아내는 해가 바뀌면 늘 새 달력에 집안의 대소사를 기록해 놓는다. 그러기에 이모부 제사가 어느 날이라는 것은 해마다 알았건만 사는 게 뭔지 마음대로 참석하게되질 않았다.

큰 이모도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하나 밖에 없는 이모님도 뵈올 겸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큰 마음먹고 차를 몰아 이모님 댁 마당에 차를 대니 이모님께서 늙으신 몸을 이끌고 나오시며 반겨주신다.

“네가 어떻게 왔니? 날짜도 안 잃어버리고…….”

오랜만에 이모님을 뵈니 눈물이 찔끔 난다. 이종사촌 형도 반갑고 여동생들도 모두 그대로인 듯 옛 생각이 떠오른다.

이모부의 동생 분들인 사돈 두 분과 사위들이 넷이나 왔고 조카 둘에 제주의 친구, 그리고 이질조카인 나까지 왔으니 제사지낼 사람들이 방으로 넘쳐흘렀다. 
자정이 되어서야 제사가 시작되었다. 독축을 하고 곡을 하는데 생각처럼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하늘나라에 계시는 이모부님께서 편히 계시는 모양이다. 제사엔 석 잔을 올린다지만 오랜만에 온 내가 잔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사위들 모두 한 잔씩 올리니 술 좋아하시던 우리 이모부 오늘은 기분이 좋으셨을 게다. 
그도 그럴 것이 8남매를 모두 훌륭히 키워내시고 게다가 이질조카까지 이토록 어엿하게 키우셨으니 대견도 하시리라. 아마도 77년 초 내가 고등학교에 합격하였을 때 이모님이야 죽은 동생의 아이니까 힘들어도 받아주고 싶었을 테고, 이모부님께서 오갈 때 없는 나를 받아주시지 않았던들 오늘의 내가 있었겠나 생각해 본다.

음복주가 돌아갈 처음에 이모부님의 바로 아랫동생인 사돈께서 제사 지내는 날은 건배해도 안 되고, 잔을 부딪쳐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언제 그랬던 말이냐는 듯 오랜만에 만난 정다운 사람끼리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모르는 사이에 건배 건배가 이어지더니 사돈어른은 형님이 좋아하시던 노래라며 노래를 부르신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던 우리 님아~ 물 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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