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벼르던 이태리 로마를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이국의 신화를 밤새워 읽고 또 읽었던 여학교 시절이 다시금 떠올렸다. 그런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갔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동네가 이곳 신화의 땅도 다를 바 없어 공항밖을 나오니 길바닥이 담배꽁초며 쓰레기다. 거리는 다져진 돌들의 그 아름다움이 앞으로도 몇 천 년을 더해도 끄떡없지 싶었다.

애써 주변을 흩어보려 하지 않아도 도시전체의 건물들, 신전, 교회의 성벽이 하나의 박물관을 형성하고 있는 듯 했다.

무너진 로마제국의 신전과 콜로세움과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내 게 다가온 건 길거리 가로수 협죽도였다. 흰색이며 분홍, 붉은색의 꽃을 달고 있는 협죽도를 예서 만나다니 무척 반가웠다. 제주공항 거리를 연상했으니. 지금 공항로의 협죽도는 언제가 아열대 수종으로 바뀌어졌다. 붉은 꽃잎이 한여름 절정이었던 유도화를 생각해서 일까, 이곳의 바람도 까닭 없이 뜨거웠다.

정돈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정돈된 길들, 이천 년 전의 계획이 지금도 유효하여 아주 아름다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꼭 몇 차선의 넓은 길만이 통행에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한다. 버즘나무 길 양쪽의 소형차들이 즐비하다. 고유가 시대에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형태의 길과 무관하지 않지만, 넓힐 수도 넓힐 필요도 없이 필요한 만큼씩 소통이 되는 거리였다.

눈동자의 초점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어 가슴에 각인 시키려 애썼는데 내 용량의 한계가 부치기도 했다. 막강한 권력이 로마로부터 나와서 저 아시아의 터키까지 영토 확장에 이뤘던 힘이 잠시 내게로 전달되었다.

그러한 힘과는 대조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거리가 오히려 마음이 편하면 편해졌다.

하지만 한 가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내안의 생리작용이었다. 강행군 하는 일정상 시간을 다투며 달리는 버스는 몇 번의 휴게소를 거르는 일이었다.

설령 목적지에 내린다 해도 가야할 화장실은 없었다. 그때마다 금방 금방 해결이 쉬운 제주의 공원화장실을 떠올렸다. 호텔식보다 더 아름다운 제주의 화장실들, 왜 돈은 그리 많이 들여 짓는지 했던 우려가 무색하게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다 싶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으로 건물 증개축이 힘들어서인지 이곳은 유적지에 딸린 화장실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설령 카페에 들어간다 해도 유료여서 돈을 내야 했다.

내 안의 생리작용을 다스리기엔 무척 힘이 들었으나 이동 거리 그 긴 시간 내 함께한 일행들도 꿈쩍 않는다. 그러다보니 내성이 생겼는지 몇 시간도 잘 견디게 되었다. 하루 반 만에 길들여져 갔다.

그렇게 이국의 여행지에서 나를 다스렸던 날이 되었다.

사람이 적응력이 얼마나 빠른가를 새삼 체험하며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오래된 그 말의 이중성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했다. 눈을 뜰 수조차 없는 햇살에 물마저 실컷 먹지 못하는 상황에 더욱 그리워진 제주의 생수는 생각만으로도 속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돌아가면 며칠 물을 실컷 마시리라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으니.

내 고장의 풋풋한 인심이 새삼 그리웠다.

산과 오름과 숲이 또 바다가 지척에 있어서 언제든지 달려 갈 수 있는 이 곳. 무엇이든 나누어 쓰려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또 그러한 정이 있어서 우리제주의 관광도 매년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지 않나하는 관광제주의 자부심을 생각해봤다.  <김윤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