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4일 그리스 대통령 궁.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그리스를 처음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국빈 만찬 답사에서 그리스어로 "건배"를 외치자 77세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의 표정은 환해졌다.

노 대통령은 해외 순방 때마다 외교부와 청와대 직원들이 작성한 해당 국가 정상에 관한 신상명세와 관련 자료를 외우다시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사전 준비가 철저하다. 청와대 핵심 인사는 "보통 전자문서로 준비하는데 속독에 암기 능력이 좋아 참모들이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이란 드라마의 주연은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단장인 범정부 차원의 "정상회담 추진기획단"이 꾸려지긴 했지만 정상회담 준비는 대부분 노 대통령 개인의 몫이다.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 무슨 말을, 어떤 표정과 제스처로 하느냐에 따라 정상회담 분위기와 성과가 좌우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회담은 외국 정상들과의 만남과는 의미 자체가 다르다"며 "회담 전까지 가급적 다른 일정을 줄이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9일 정부 기획단과 별도로 윤병세 안보수석을 팀장으로 하는 자체 태스크 포스(TF) 팀도 만들었다.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뒤 노 대통령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의 자료와 김 위원장 관련 자료들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8.28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 대통령은 이미 김 위원장과 가상의 대화를 시작한 셈이다.

노 대통령의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 정보기관 용어로 "가게무샤(影武者)"로 불리는 대역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가게무샤는 일본말로 "가짜 무사"란 뜻이다.

2000년 6월 준비성이 치밀한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두고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가상 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는 김 위원장의 대역을 맡은 정부 부처의 한 직원이 DJ(김대중 대통령)의 맞은편에 앉아 실제 회담처럼 대화를 나눴다. 이 직원의 신분은 베일 속에 가려 있다.

국가정보원이 관리한다는 이 직원의 평소 임무는 김 위원장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아침에 북한 노동신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해 북한 TV와 서적 등을 보며 "김정일 되기"로 하루 일과를 보낸다.

애초엔 김일성 주석의 대역이었으나 그가 사망하고 1994년 김 위원장이 권력을 장악하자 김 위원장의 대역으로 임무가 바뀌었다는 게 정통한 소식통의 설명이다.

당시 DJ와 가게무샤는 네 시간이 넘도록 기 싸움까지 겸한 가상 회담을 했다. 처음에 국정원 측은 김 대통령이 가게무샤와의 리허설을 수락할지 걱정했으나 김 대통령은 "이렇게 좋은 제도가 있는데 왜 안 하느냐"며 가상 회담을 수용했다고 이 소식통이 전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가게무샤 리허설"에 대해 "1차 정상회담은 역사적인 첫 만남이란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번 회담은 좀 다르지 않으냐"며 "대통령은 차분하면서도 내실 있는 회담이 되게 준비하자고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관 측은 가게무샤에 대해 "존재와 역할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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