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인근에도 재선충병으로 고사한 소나무들이 많이 있다.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가 확산되면서 청정 제주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 재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선충병에 의한 소나무 고사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제거 작업 과정에서 안전사고까지 노출돼 있다.
제주도가 지난 9월 재선충병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현재 연인원 2만 275명을 동원, 소나무 5만 7000여 그루를 베어냈다.
본지는 재선충병의 발생과 피해현황, 연대책임, 현장을 찾는 기획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비행기에서 창밖으로 내려다볼 때는 참 단풍이 곱게 잘 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게 단풍이 아니라 재선충병으로 죽은 소나무라는 것을 알고 깜짝놀랐어요.”

요즘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깜짝 놀란다. 제주를 울긋불긋 물들인 고사한 소나무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다 세계 7대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의 섬 제주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 2020 세계 환경 수도 꿈꾸는 ‘청정제주’이미지 물거품

2020 세계 환경 수도의 비전을 품고 있는 제주는 세계가 인정하는 자연유산이다. 제주도는 UNESCO 3관왕에 이어 람사르습지 등록, 세계7대자연경관에 선정되는 세계적으로 청정제주의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20년 세계환경수도를 꿈꾸는 제주도로서는 재선충병에 발목이 잡혀 있는 셈이다.

도내 소나무 숲 면적은 1만 8246ha로 8만 8774ha인 전체 숲 면적의 20.6%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0월 현재 제주도가 전문 용역업체에 맡겨 추산한 소나무 고사목만 17만5000여 그루에 이르며, 내년 4월까지 5만2000여 그루가 더 늘어 총 23만 그루가 고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제주도 전역이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소나무가 고사한 모든 원인이 재선충병은 아니지만,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고사목의 원인을 가릴 필요없이 전부 파쇄한다는게 도의 입장이다. 자칫 잘못하면 제주도 전역의 소나무를 재선충병으로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도는 지난 9월 2일에야 ‘소나무 재선충병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도민들의 힘을 모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 때 소나무 고사목과 재선충 감염률 등 기초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도는 전쟁을 선포할 당시 고사한 소나무 3만5000여 그루 가운데 2만1000여 그루는 지난 8월까지 제거했고, 나머지 1만4000여 그루는 연말까지 제거할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도가 지난달 용역업체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고사 소나무가 17만5000여 그루로 집계돼 지난 9월 예측한 2만1000 그루보다 무려 8.3배나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한라산연구소가 지난 달 7~18일 애월, 한경, 대정, 안덕 등 소나무 고사목 집단 발생지의 고사목 210그루를 표본으로 조사한 결과 재선충병 감염률이 평균 58.6%로 기존에 발표했던 재선충병 감염률 25%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재선충병 방제를 총괄하는 세계환경수도추진본부 현을생 본부장은 "예년 수준으로 방제대책을 세웠는데 이상기후 등으로 재선충병 확산속도가 상상을 초월해 문제가 생겼다"고 해명했지만 도의 안일한 행정이 화를 불러일으킨 인재(人災)임이 분명하다.

지난해 1만8000여 그루였던 고사 소나무 수는 올해 10월까지만 벌써 17만여 그루를 넘어섰다. 아무리 기후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1년 사이에 고사목이 10배나 뛰었는지는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이는 도가 그동안 제대로 된 현황파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 마디로 세계환경수도를 꿈꾸는 제주도 스스로가 환경수도를 실천할 의지가 없었음을 보여준 셈이다.

심지어 재선충병 사태는 점차 악화돼 국가지정 명승 제77호인 산방굴사 입구를 지키던 노송이 지난 달 재선충병에 감염돼 500여 년의 생을 마감했고, 서귀포 주상절리대, 비자림, 만장굴 등 문화재 보호구역은 재선충병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더욱이  효례·하례천 일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일부에도 재선충병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더 더욱 긴장케하고 있다.
뒤늦게 도가 선단위 압축방제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솔수염하늘소 유충이 성충이되는 내년 4월까지 과연 방제작업이 다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제주시 용담동에 사는 황 모 씨(62)는 “어디까지 제주도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신뢰가 바닥났다”며 “산은 자꾸 타들어만 가는데 너무 답답하다”는 말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 재선충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가?

세계적으로는 1905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발병한 재선충병은 67년이 지난 1972년에야 정확한 원인과 매개경로가 밝혀졌다. 현재 일본 홋카이도를 제외한 지역의 소나무 자생림은 전멸하다시피했다.
중국도 1982년 난징에서 처음 재선충병이 발생, 우리나라 전체 산림면적 642만ha보다 더 많은 700만ha의 숲이 피해를 입었다.

우리나라는 1988년 10월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올해 9월까지 전국적으로 92만여 그루가 재선충병에 의해 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존 피해지 위주의 예찰 결과이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