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김광열 시인 |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절정기도 어느덧 지난 듯싶다. 온 산과 숲, 거리를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던 계절이 뒷걸음질치고 조락의 계절이 성큼 발아래 다가와 있다. 도처에 낙엽이 떨어지고, 바람이 한 떼의 낙엽을 이끌고 어디론가 정처 없이 불어간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몇 방울 눈물이 핑, 돌거나 한숨이 새어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혹자는 이 숨 가쁜 세상에 그런 감상에 빠질 여유가 어디 있느냐며 가자미눈을 뜨기도 할 것이다. 세상은 갈수록 끝 모를 대로 치달아 마치 벼랑위에 선 것처럼 위태, 위태하다. 이미 인류는 핵그늘 속에 지낸지 오래며, 지구는 지역분쟁 등으로 인한 갈등과 알력, 충돌, 내분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세계가 세계를 감시하고, 지역이 지역을 감시하고, 내가 너를 또는 네가 나를 감시하고 밟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형편은 또 어떤가. 다소 억측인지 모르지만 부정과 부조리가 곳곳에 그 도를 넘은 것처럼 보인다. 자신은 탁(濁)하면서 남은 맑기를 바라는 이율배반적인 심리가 팽배한 것 같다. 그와 더불어 정치권은 여러 현안 문제들에 대해 아전인수식 분석과 해석을 내놓아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급급한 인상이 짙다. 혹, 내 것은 부조리한 것이어도 옳고, 남의 것은 옳은 것이어도 부조리하다는 모순된 인식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이곳 제주 또한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4·3 문제라든지, 강정 문제, 생태 문제, 땅 문제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그런 문제들은 모두 우리의 삶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도전과 응전을 통한 변증법적 지양과 발전이 이루어져 나가긴 할 것이다. 허나, 그것이 당연한 법칙은 아니다. 타인의 의견이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만의 가치를 억지 주장한다면, 더욱이 그 주장이 어떤 상황을 왜곡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치유하기 어려운 커다란 상처로 남을 것이다.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이면서 보편타당한 문제 접근과 해결이 필요한 이유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과연 소통과 화합과 갈채(喝采)의 사회는 이루어질 것인가?
이 가을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감성은 연약한 자의 것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결코 연약하거나 나약한 것이 아니다. 풍부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 오히려 인간적인 판단을 하고 진정으로 인간에게 다가가는 일을 할 수 있잖을까. 그것을 깨달으라고 나뭇잎은 저렇게 몸 뒤채며 떨어지고 봄이 되면 다시 소생하는 것이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