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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중심의 뜻
김국주  |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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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18  1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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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주정차된 차들은 길가에 늘어서 있고 보행자들은 차도로 나와 위험스럽게 걸어가는 모습은 제주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운전자들은 "요즘 사람들은 차를 무서워하지 않아. 차가 와도 피할 생각을 안 해"라고 되레 보행자들을 탓하기도 합니다.

서울을 포함하여 육지 어디에서도 동네 골목길은 대개 보행자 전용도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그런 길은 차도로 인식되었고 차를 피해 조심하여야 할 측은 당연히 사람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있습니다.


수년 전 겨울, 일본의 유명한 온천휴양지 "유후인"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골목을 따라 기념품 가게과 식당이 늘어서 있고 손님들이 북적거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차들이 지나 다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인도가 없었습니다. 인도가 따로 있으면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걸어다니며 쇼핑을 할 텐데 하는 생각에 어느 상점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인도가 따로 없나요?" 그 때 돌아온 대답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길 전부가 인도지요. 차들이 인도를 빌어서 다니는 것입니다."

조금 더 눈 여겨 보니 차들은 마치 인도 위에서 운행하듯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의 보행을 방해하는 세워진 차는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위상이 격상되면서 내세운 이상형은 사람중심 지식중심 환경중심의 국제자유도시 건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사람중심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좀 딱딱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자본주의가 무엇입니까? 생산의 3대 요소 중 자본을 중심에 놓고, 사업을 하여 남는 이익을 자본이 가져가는 사상입니다. 다른 생산요소는 모두 비용입니다. 인건비도 자본의 입장에서는 비용이므로 줄일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거시적으로 보면 근로자의 월급은 우리 사회가 생산하는 물건들을 사주는 구매력의 원천입니다. 사람을 쓰는 비용을 줄여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은 결코 나무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자본가들이 이렇게 할 때 결국은 자기 물건들을 사줄 호주머니까지 털게 되는 모순을 낳게 됩니다. 소위 "구성의 모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지요.

내수부족을 과거에는 수출로서 해결했지만 각 나라마다 수출에 매달리게 되면 이것도 결국에는 구성의 모순에 부딪칩니다.

해결방법으로 협동조합 또는 종업원지주제 등이 시도되고 있지만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제도는 아직 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생활 구석 구석에서 사람이 중심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다 보면 거기에 맞는 시스템도 뒤따라 올 것입니다.

도로를 인간중심으로 개선하는 일은 정부가 목표로 세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도 기여할 것입니다.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도로는 주변 상점들의 매출을 증가시켜줄 것이 때문입니다.

대형백화점은 대형백화점대로 필요하고 소형점포들은 소형점포대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고용효과가 높은 쪽은 아무래도 소형의 점포들이라는 사실은 각종 통계가 입증하는 바입니다. 대형백화점 쇼핑은 차량을 이용하므로 보행자도로의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동네 또는 관광지의 소형 점포들에서 쇼핑을 즐기려면 걷는 거리가 꽤 길어지게 됩니다.

현행 법규는 폭이 좁은 도로의 경우에는 보행자 도로의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중심의 사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입니다. 가급적이면 인도 설치를 의무화 하되 폭이 너무 좁아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어려운 도로는 이를 일단 전부 인도로 간주하는 내용으로 관련 법규를 정하면 됩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라면 도의회에서 조례로 통과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보행자에게 편하고 안전한 도로는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를 막는데도 기여할 것입니다. 아낙네들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주택가와 상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광경을 상상해 봅니다. 제주도가 우리나라 다른 곳에서 아직 하지 못하고 있는 일에 한발 앞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것이야말로 특별자치도 제주도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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