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한 해가 저무는 세밑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말이 ‘다사다난(多事多難)’이지만, 올해처럼 이 말이 실감있게 느껴지는 해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같다. 그 만큼 탈도 많고 어려움이 많은 해였다.
물론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돌파해 도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준 것은 올해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 200만 시대도 함께 열려 국제관광도시를 추구해 온 도민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하지만,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이 압도해 도민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던 한 해였다. 특히 대부분 도민들의 삶의 질이 더 팍팍해졌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회조사’ 결과는 실망을 넘어 좌절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도민의 절반 정도가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하층’(49.2%)이라고 생각한다는 반응을 보였으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간층은 48.6%, 상층은 겨우 2.1%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스스로 하층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2년 전보다 5%p 늘었으며, 중간층이라고 대답한 사람도 6.9%p나 줄었다. 자신을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늘었다는 점 하나 만으로도 제주경제의 실상을 충분히 간파할 수 있게 한다.
2
지금 도민사회의 절실한 과제는 점점 벌어지는 삶의 양극화 현상을 타개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우선 하층으로 추락한 49%대를 다시 30%대 후반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낮아진 고용률 (66.6%)과 함께 5000명으로 작년보다 2000명이 더 늘어난 실업자 수를 크게 줄이는 일도 제주사회가 직면한 최대 현안이다.
제주지역 경제지표가 다소 호조를 보였다 하나, 여전히 전국 하위권에 그친 경제성장과 이로 인한 도민소득이 전국 꼴찌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특별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를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른 지방에는 없는 자치권을 대폭 부여해 생산 유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특별자치도도, 많은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해 도민소득 향상은 물론 국민소득에 까지 기여하기 위한 국제자유도시도 모두 말 뿐이다.
오히려 다른 지방에 비해 가난한 자치도 국제자유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증앙정부가 특별자치도에 걸맞은 예산 지원을 기피하고, 돈은 별로 쓰지 않으면서 몸만 왔다 가는 국제관광지가 지속되는 한 제주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의 미래는 없다.
3
올 한 해는 가뜩이나 90년 만의 극심한 가뭄까지 겹쳐 도민들의 삶을 더 어렵게 했다. 여기에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농업인들이 '한중 FTA 결사 반대‘ 피킷과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뛰쳐 나오기도 했다.
특히 제주전역에 소나무 재선충병이 확산돼 십 수만 그루의 소나무가 무참히 잘려 나가는 도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도 제주도가 초기 대응만 잘 했다면 충분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제주도가 자초한 재앙(인재)이었던 셈이다.
도민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대지가 타들어가는 장기가뭄과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온 산림이 신음하는 가운데 빚어진 공무원들의 공금횡령 등 잇단 비리사건도 올 해 씻을 수 없는 공직사회의 오점이다.
대부분 한 해를 보내는 시점에 서면 관용의 미덕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삶의 질 추락과 재선충병의 만연을 자초한 제주도의 무사안일과 무책임, 그리고 공무원 범죄만은 덮어두고 갈 수 없다.
비록 2013년은 오늘로 마감하지만, 이 세 가지 현안만은 새해에도 최대의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