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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제주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
정치 얘기는 아니다. 본디 뜻대로 아무 탈 없이 편안하냐는 의도이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의 옷거리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해지고 풍성해졌다. 근래 패션산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복종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아웃도어웨어와 일명 패스트 패션이라 불리는 SPA브랜드의 옷들이다.
SPA는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Brand의 약자로서 자사의 기획브랜드 상품을 직접 제조하여 유통까지 하여 유통단계를 축소한 만큼 상품 회전 주기와 가격을 대폭 낮춘 글로벌 의류 브랜드를 말한다. 제주도에는SPA 브랜드의 오프라인 매장이 아직 들어오진 않았으나, 인터넷이 발달하고 해외여행이 빈번한 요즘 옷 입는 데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은 누구나 사입고 싶은 옷 중의 하나이다. 패션산업이 전례 없는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SPA브랜드 의류는 매출성장을 멈추지 않는다고 하니, 그 이면에는 어떤 사정이 숨어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패션의 본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개성 표현과 추종이다. 인류가 옷을 입은 이유가 추위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매력 있고 두드러지게 꾸미기 위해서라는 학설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만큼 자신의 신체를 아름답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을 옷이 도와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들과 똑같아지고 변화하는 유행을 따라 하려는 심리가 있어 멀쩡한 옷을 놔두고 소위 트랜디한 옷을 끊임없이 갖추고 싶어한다. 패스트 패션은 요즘 같은 경제 불황기에 우리 주머니 사정과 패션 심리욕구가 적절히 타협하여 성공한 케이스가 아닌가 한다. 반드시 특정 브랜드를 거론하지 않고서라도 쉴 새 없이 변하는 유행에 동참하기 위해서 옷을 입다가 빨리 버리고 또 새 옷을 사는 일회용 개념의 옷 입는 문화가 우리 생활에 젖어 들은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한 벌 값만 저렴한 옷을 구입한다고 경제와 환경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옷을 몇 벌이나 사서 어떻게 입고 어떻게 처분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식품에서 패스트푸드가 진정 건강한 음식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듯이 패스트 패션 또한 편안하고 떳떳한 옷이라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식품에 대해서는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무엇이 들어가는지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몸에 들어가지 않는 옷이라고 그만큼 덜 신경쓰게 된다. 그러나 공정무역먹거리, 공정여행처럼 공정무역패션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쇼윈도우에 새로운 스타일의 옷이 디스플레이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짐작하다시피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국이 아닌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를 포함한 후진국의 값싼 노동력에 의해 글로벌 기업의 패스트 패션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아하게 즐기는 커피의 원두가 아프리카와 남미 어린이들에 대한 부당한 착취에 의해 대부분 생산되는 것처럼, 패스트 패션을 만드는데 쓰이는 후진국 노동력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 70년대 청계천 숨막히는 다락방에서 어처구니없는 대우에도 재봉질로 밤낮을 밤낮을 세웠던 어린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지금은 한 계절도 채 못 입혀지고 버려지는 우리 옷장 안의 화려한 옷들 속으로 국적만 바뀐 채 스며들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옷들은 일회용품처럼 수없이 버려져 전 세계 쓰레기의 3분의 1이 옷가지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제 우리의 입거리는 땅과 공기,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과감히 갖다 버리지 않더라도 집집마다 쌓인 안 입는 옷들은 우리 속을 편안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비싼 옷 사서 오래 입자는 건 아니다. 금방 갖다 버릴 옷, 누군가의 땀의 대가가 제대로 치러지지 못한 옷으로 우리의 미적 욕구를 헛되이 하지는 말자. 나의 안목과 다른 사람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속 편안한 옷들도 옷장을 오래 오래 채우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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