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
“늦어서 죄송해요. 금방 내려갈게요. 지금 너무 바빠서.”오후 6시 MBC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막내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남은영(여ㆍ25) 씨와의 첫 인사였다. 사람 좋은 인상의 반달 눈에 생글생글 웃은 얼굴. ‘격무에 찌든" 피곤한 얼굴일 거라는 상상과 달리 무척이나 활기차 보였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오직 작가만을 꿈꿔 왔어요”라고 운을 뗐다. 그 이후 문예창작학과 졸업, 6개월 과정의 방송아카데미 수료. 잠깐의 쉼도 없이 작년 3월 방송국에 입사해 시사교양 프로그램 두 개를 거쳐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있다는 데까지 거침없이 달려온 시간을 얘기했다. 그녀는 예능 작가의 꿈, 그 꿈으로의 과정이 지금까지는 순탄했다고 조심스레 고백했다.
그러나 그에게 오늘 당장 겪어야 할 현실은 소위 ‘빡셈"의 연속이었다. 그는 “막내로서 일에 대한 올인”이라며 “개인 생활은 없다”고 자신의 생활을 정리했다. 세 손가락을 펼쳐 들고 ‘아침 일찍", ‘밤 늦게", ‘밤샘"을 필수라고 꼽았다.
작가라서 글만 쓸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섭외부터 촬영 일정확인, 아이템 발굴, 대본 집필까지 모두 그녀 몫이다. 그는 “친구도 거의 못 만나요. 노처녀들이 태반이죠. 다들 알고 시작하지만 막상 중도에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미 한 번의 꿈을 이룬 그녀에게 앞으로의 ‘꿈"은 뭘까. 그녀는 “보장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모험이죠. 막내에서 ‘서브" 작가로, 다시 ‘메인" 작가로 언제 도약할 수 있을 지 기약이 없다”며 자신을 프리랜서라고 소개했다. 사실 그녀에겐 정해진 작업장이 따로 없다. “집에 가서도 글을 쓰고 일을 계속 해요. 머리 속은 ‘아이템"에 대한 압박으로 항시 뒤죽박죽이죠.”그래서 실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그는 “작가들은 꿈도 프로그램 꿈을 꾼다” 는 김경남 작가의 ‘스타 교과서"의 한 대목을 자신에 빗대 소개했다. 작가의 길엔 왕도가 없기 때문이다. “뭐든 많이 알아야 하니까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 가고, 이런 저런 경험도 필요해요” 실무적으로 맛집을 많이 아는 것 조차 능력과 직결되는 작가의 세계에서 막내로 열 배 열심히 뛰는 그녀의 몸은 백 개라도 모자라다.
그는 작가 생활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타고난 원만한 성격을 들었다. 그는 “방송계가 워낙 좁기 때문에 미래는 실력에 기반한 ‘인맥"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PD나 다른 작가들과의 인간관계가 성공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열쇠"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지망생이던 시절 방송 작가로 일하던 친한 언니가 왜 자신을 그토록 말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는 그녀는 금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음 스케줄이 그를 그냥 두지 않는다.
그 는 “스타작가가 언제나 될까라는 불안감은 누구나 있어요. 그래서 금새 포기하는 사람도 많고요”라며 살짝 웃었다. 처음 1년 동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도 그 고민을 했단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한테 웃음을 주고 싶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프로를 만들고 싶다”며 하얀 윗니를 드러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꿈을 꾸고 있는 그녀의 웃음 너머로 치열함과 열정, 끈기가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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