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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렬 시인 |
사람들은 역사에 어떤 이름을 새기고 싶어 할까? 혹자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도 급급한데 뜬금없이 웬 역사 타령이냐고 뜨악한 눈초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역사라고 하는 게 알고 보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이 현장이, 현실이 바로 역사다. 그러므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다. 우리가 살아가는 발자취를 더듬어 주요한 가치 판단을 기술한 것이 역사(서)가 되겠지만, 어쨌든 역사를 만들어가는 존재는 우리다.
소시민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역사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무책임한 사고다. 가령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는 비록 역사(서)에 기록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내가 살아가는 이 삶이, 이 노동과 흘린 땀방울과 생각이 알게 모르게 그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거나 바람직한 여론을 형성하고 변혁하는데 순기능을 한다면 그것이 참다운 역사를 새기고 창출하는 행위다.
내 배 부르고 등 따뜻하면 그만일 뿐 세상이야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상관없어, 하고 세상과 담 쌓아버린다면 누군가는 그 틈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거나 빗나가게 하는 간계를 꾸밀지도 모른다. 최근 모(某) 한국사 교과서 논란이 그 한 예다. 가령, 일제가 식민지 국가를 근대화시켰다는 식의 논조는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한국은 적어도 19c후반 무렵에는 다소 미미하다 하더라도 이미 근대화가 발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설령 일제 식민지 시절에 더 많은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손치더라도 그것은 결코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거나, 일제가 아니어도 우리의 자력으로 근대화는 얼마든지 점진적으로 촉진되었을 것이다.
일제가 이 땅에 시설한 구조물들은 정신사적인 측면이기보다는 대부분이 물리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지엽적인 부분을 놓고 우리는 그것을 일제에 의한 근대화라고 명명할 수 없다. 그들이 목적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육체적 · 정신적인 말살과 수탈과 착취를 일삼았으므로 그런 불순하고 편협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결과물을 또한 근대화라 인정할 수 없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거나, 모른 척 슬그머니 수용해버린다면 그 역시 정신사적으로 누군가에게 수탈당하거나 지배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당신은 당신만의 아성(牙城)을 쌓고 진실을 외면한 채 혼자만의 안락한 삶을 추구하려는가? 나무들이 베어 없어진 텅 빈 공간 속에서, 또는 황량한 벌판에서 무주공산의 주인이 되어 공허한 메아리로 떠돌려는가. 나무 섰던 자리에 나무 없고 사람 있던 자리에 사람 없다면 당신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새겨나가는 역사가 이 땅에 나무를 서 있게 하고 벌판을 기름지게 하고 자유와 진정한 민주사회를 창출해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당장의 이득에 눈이 멀어서,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이 두려워서, 밥그릇 문제 때문에 등등의 핑계와 변명으로 세상을 곡학아세하거나, 역사에 한 발 빗겨 서 있다면 그는 참다운 역사를 새겨나가고 있는 게 아니다. 당장은 현실에 이기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역사에게 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빗나가고 비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적극적인 현실 참여와 더불어 부조리를 향한 현명한 일침(一針)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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