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1771)의『표해록』이다.

장영주 명예문학박사/문화평론가

「혹은 일어나 한라산을 보고 절하며 축원한다. “백록선자님, 살려주소. 살려주소. 선마선파님, 살려주소. 살려주소.” 대저 탐라 사람에게는 세간에서 전하기를 선웅이 흰 사슴을 타고 한라산 위에서 놀았다하고, 또한 아득한 옛날에 선마고가 걸어서 서해를 건너와 한라산에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 선마선파와 백록선자에게 살려 달라고 빌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은 당연하다(정병옥 옮김, 1979: 79).」
인용문은『표해록』초닷새 일기의 중간 부분이다.  

설문대여신(할망)은 ‘백록선자’ ‘선마선파’ ‘선웅’ ‘선마고’ 등으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제주인들의 신으로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 도움 요청 대상은 대체적으로 평소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신적인 존재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설문대여신은 제주인들을 가장 잘 보듬어주고 지켜주었던 제주도 최초의 신이 아닌가 하는 믿음을 준다. 장한철의『표해록』에 이어 이원조(1843)의『탐라지초본』에서도 신녀(살만두할망)가 등장한다.

장한철의『표해록』은 국립제주박물관(장한철 필사본)과 국립중앙도서관(심성재 필사본)에 소장된 필사본 2권이 전해온다. 특히 국립제주박물관에 보관된『표해록』은 제주도유형문화제 27호로 지정되었다(책으로는 제주도에서 처음이다). 장한철 후손의 증언에 따르면 강원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직계후손이 나타나면 되돌려 줄 심산으로 국립제주박물관에 5년 단위로 보관을 의뢰한 상태이다.

1770년 12월 25일 출항하면서 쓰기 시작한『표해록』은 폭풍을 만나 조난되었을 때 원본은 소실되었고, 다행히도 시간이 조금 경과하여서 기억을 더듬어 정확하고 상세하게 사실적인 문체로 다시 썼다 한다. 이 필사본을 근거로 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번역본들이 출간되면서 해양문학의 백미로 자리매김 되었다.
『표해록』은 설문대신화의 최초 문헌기록이고 당시 해양, 문물, 풍습 등을 담고 있어 해양문학의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 되고 있다. 또한 후손들의 협조로 기적비가 건립되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다만 장한철 일행의 출항지(포구)가 어딘지 불분명하고 일기를 쓴 날짜를 분석해 보면 필체가 여러 명으로 나타나는바『표해록』은 장한철의 필사본인지 편집본인지는 더 연구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위인은 만들어 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묻혔던 진주가 세상에 드러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동안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들의 제안과 뜻 있는 문학단체의 관심 속에 ‘장한철 산책로’ 표지석이 세워지고 ‘장한철 표해록 백일장’이 시행되었다. 아울러 ‘장한철 생가’를 복원하기 위해 부지를 구입하여 그곳에「장한철 문학관」과 「시비 동산」을 만들어 ‘해양문학 창작실’을 열 계획을 세우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돈이나 뜯으려고 달려들고 있다.”는 말이 혹여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한자리 꿰차려는 사람이 생겨난다면….「양한묵 선생 기념관」건립 사업비 25억 원 중 9억여 원은 후손(문중)에서 충당한 사례를 보더라도「장한철 문학관」을 건립하는데 후손들의 넓은 이해가 수반되어야 의미 있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제 장한철의『표해록』에 대한 관심을 업그레이드 할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에서는 장한철『표해록』을 학생용으로 만들어서 배포할 예정이라 하니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