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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길 시인 |
슬쩍, 우스갯소리 한마디 하고 넘어가자.
누가 나에게 “오래 살려면 무엇을 잘 먹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이를 잘 먹어야 오래 산다”고.
나잇살 잘 먹는 일,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먹는 말이 나왔으니 이번엔 먹는 타령 해보자.
우리 어른들의 소싯적에는 가난하고 못 살아서 먹을 게 없어 배 곯는 날이 많았다. 배고픈 옛 시절 생각하면 먹는다는 것이 한 맺힌 일이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이식위천(以食爲天)이라 했다. 사람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과거에는 먹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자라나는 어린 자식들에게 이런 옛날이야기를 하면 밥 대신 빵을 먹으면 되지 않았느냐고 씨알 빠지는 소리를 한다. 오늘날에는 하도 먹을거리가 많고 많아서 탈날 지경이니까. 몇 푼돈만 내밀면 입맛대로 골라 사 먹을 수 있는 시대이다.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우리네 사는 동네를 보면 한 집 건너 식당이고, 두 집 건너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다. 길 건너편에는 대형마트가 있고 간식거리 파는 포장집과 가게들이 즐비하다.
이젠 집에서 젊은 며느리들이 먹을거리 장만하느라 뚝딱거리며 냄새를 풍길 필요가 없다. 모든 음식 종류들이 보기 좋고 먹기 좋게 이미 만들어져 나와 있다. 또 굳이 발품 팔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 저장된 번호를 눌러 주문만 하면 곧바로 배달된다. 별의별 음식들이 가공되어 판매되고 있다.
인스턴트식 먹거리들이 다양하게 있어서 선택하는 일이 오히려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평생 먹어보지도 못할 음료수와 다과들, 계절 관계없이 한 겨울에 냉면도 먹을 수 있고 빙과류 따위 얼음 녹는 과자도 서비스로 나온다.
주체가 되는 음식을 시키면 객체가 되는 보조 식품들, 이른바 덤으로 나오는 일본식 쯔키다시용 먹거리들은 기본이다.
-먹거리 이야기는 이제 그만 두자. 가난해서 못 먹고 못 살던 옛적 이야기도 그만두자.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소리는 먹혀들지 않는다. 젊은 애들의 입맛은 늙은 어른들의 입맛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해가 바뀌면서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고 한다.
<나이를 먹는다> 즉, 출생(出生)이라는 말은 “먹는다”라는 행위를 전제하여 생겨났다. 원래 출생(出生)이란 말은 불교에서 온 말이다.
출중생반(出衆生飯)이라 해서 중생에게 밥을 준다는 뜻인데, 이 말의 유래는 <불법(佛法)이 있는 곳에는 다 그 밥을 베풀지니, 만일 주처(住處)에서 시식하지 않는 자 이는 마군의 권속이요 불제자가 아니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태어남과 먹는다는 행위가 동일 시 되는 것으로 볼 때 나잇살도 먹는다란 말로 직결되어짐은 타당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니 오래 사는 것, 그것은 나이를 많이 먹는 일이 된다.
그러나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과찬할 일만은 아니다.
나이에 비례하여 얼마나 현명하고 슬기로워진 눈을, 마음을 가졌느냐가 문제다.
어느 유명한 시인이 쓴 <나이의 의미>란 글을 읽어보았다.
그 글에서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노쇠나 인간적인 기능의 약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들의 내면에서 감추어졌던 눈을 뜨게 하는 일이다. 곧 눈이 어두워지는 일 아니라 밝아지는 일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나이를 먹음으로써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눈, 나무를 나무로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된다>.
어느 철학자의 비유에 따르면 나이듦은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
산 아래 있을 때는 우리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시야가 좁고 막혀서 먼 곳의 외물(外物)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정(山頂)을 향해 오를수록 안계(眼界)가 확대되고 경계도 높아지면서 시야가 넓어진다.
그렇다. 넓게 보고 깊게 이해하는 눈을, 마음을 가지게 되는 일 그것이 나이를 먹는 일인 것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세상일의 경험도 그만큼 많아진다.
인생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이 깊어진다.
<나이를 먹는 일>, 그것은 인생의 지혜를 쌓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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