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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수 남서해수산연구소 자원환경과장 |
2월 중순이면 한라산의 남쪽 산남의 연안에서는 보통 체장이 10㎝ 이상되는 대형멸치들이 잡히곤한다. 특히 대마난류 세력이 강하든지 수온이 높은 해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난류가 올라오면서 조석에 따라 난류수괴(물덩어리)가 생기고 간혹 해양환경적으로 차단되는 일정 유역 속에 멸치어장이 형성되어 좋은 어황을 보이기도 한다. 올해는 멸치어장이 크게 형성되어 만선이 고동소리가 우리나라 최남단의 서귀포 연안에서 매일 울리기를 기대해본다.
멸치가 많이 잡히는 해는 모든 수산생물 특히 어류생산량이 매우 증가함을 알 수 있다. 옛날 제주도 말에 바다에서 많은 생물이 잡히지 않을 때 우리의 선조들은 “맬이 와사 헌다(멸치가 연안어장으로 들어와야 한다)”라고 푸념 섞인 말을 하곤하였다.
멸치는 우리 인간의 식탁에 미각을 돋구어주는 감초역할 뿐만아니라 바다 생물들에게 먹이가 되어주므로서 멸치가 잘 잡히는 해는 바다에는 보통 풍년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멸치가 많이 어획되는 해는 많은 어류들이 풍어가되는 것이 통설이라는 말이다. 2월 중순에 어획되는 멸치는 봄철에 산란을 위한 많은 난을 잔뜩 품고있고 이 난들이 어미의 뱃속에서 이탈되어 나오는 순간 수많은 생물의 먹이가 되어 주기도 한다.
멸치는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어류로 생선 구경을 변변히 못하던 산간 벽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생물이다. 국을 끓일 때 없어서는 안되고, 김장할 때 멸치젓은 빠질 수 없는 재료이다.
옛날 우리 아버지들은 구멍가게에 앉아 말린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세상을 토론하고 인생을 이야기할 때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물고기였다. 멸치는 작고 힘이 없으면서 성질까지 급하다.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어버리고 만다. 바다에는 약 2만 여종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식구를 거느린 종은 너도 생선이냐 할 정도로 작고 힘없어 보이는 것도 바로 멸치이다. 멸치는 생태계의 먹이사슬 속에서 낮은 지위에 속하는 무리로서 주로 플랑크톤을 잡아 먹으며 육식성 어류의 먹이도 되어준다.
그렇다면 이 험난한 세상에서 멸치는 어떻게 어떻게 대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일까? 이는 몸의 소형화, 다산, 빠른 부화, 조기 성숙 등의 적응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육식성 어류의 먹이가 되어야할 운명인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빨리 자라서 많은 새끼를 번식시켜야 하므로 다른 물고기보다 짧은 생식주기를 갖는다.
멸치는 어느 것 하나 버리는 것 없이 머리 및 내장까지 통 채로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다. 따라서 단백질과 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하여 성장기의 어린이나 임산부는 물론 여성의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서도 적극 권장할 만한 국민 건강 식품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주 산물로서 행어(行魚)가 보이는데 정문기 박사는 이것을 멸치라고 해석했다.
난호어목지와 임원십육지에 의하면 ‘동해에서 멸치는 방어 떼에 쫓겨 그 세가 마치 풍도처럼 대량으로 몰려오면, 어부는 방어 떼가 온다는 것을 알고 이를 큰 그물로써 둘러싸면 온 그물이 온통 멸치이므로 방어를 골라 낸 후에 남은 멸치는 모래사장에 말려 판매하는데 전국에 넘쳐흐른다’고 하였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흑산도에 귀양 중에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멸치(추어)는 몸이 매우 작고, 큰 놈은 서너 치, 빛깔은 청백색이다.
6월 초에 연안에 나타나 서리 내릴 때에 물러간다. 성질은 밝은 빛을 좋아한다. 밤에 어부들은 불을 밝혀 가지고 멸치를 유인하여 함정에 이르면 손그물로 떠서 잡는다. 이 물고기로는 국이나 젓갈을 만들며 말려서 포도 만든다’고 기록되어 있다.
멸치는 단백질(말린 멸치 100g당 47.4g)과 칼슘 (말린 멸치 100g당 1905㎎) 등 무기질이 풍부해서 특히 발육기의 어린이나 성장기의 청소년, 임산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좋은 생선이다.
불안하거나 신경질이 나는 것은 체내 칼슘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매일 일정량의 칼슘을 섭취하면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좋다. 멸치는 봄과 가을이 제철이다.
“맬이 들어와야 하간 것 들이 들어 온다(멸치가 연안어장으로 들어오면 멸치를 따라 많은 고기들이 모여든다)”라는 제주도 속담이 있다.
연일 강추위로 싱싱한 멸치에 배추 잎과 고춧가루를 팍팍 넣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봄철 멸치 국 맛이 벌써 그리워지는 것도 새 봄 새 소식의 전령사인 멸치를 빨리 만나보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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