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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은미 시인 |
일상이 시계처럼 돌아간다.
때 되면 점심 먹고, 때 되면 공과금 내고, 때 되면 원고 마감하고, 때 되면 밥을 한다. 직업상 퇴근은 없으나 때맞춰 해야 하는 일은 수두룩이 쌓여 있다.
도서관에서 때 맞춰 써야 하는 글을 쓰다가 뭔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인근에 있는 생태숲을 거닐어본다.
때맞춰 복수초가 노란 부리를 살짝 내밀었다.
지난주만 해도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르던 녀석인데 말이다.
꽃들의 생명은 추운 겨울에도 뿌리 끝에 에너지를 모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복수초로부터 확인한다. 복수초도 때가 되어 제 할 일을 한 셈이다.
그런데 문득 물음 하나가 정수리 끝에서 솟아오른다.
“꽃은 왜 피어나는가?” 하는 물음.
꽃은 왜 피어나는가.
생물학적으로 말한다면 유전자가 내장된 씨가 뿌려졌으니 꽃이 피어난다고 하면 되겠지만 존재론적으로 물으면 난감해진다.
그것은 나는 왜 사는가와 똑같은 물음이기 때문이다.
왜 사는가? 참 난감한 물음이다. 태어났으니 사는가?
향기 없는 일상에 매여 살다 잠깐 거리를 두니 난데없는 물음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생각 없이 산다는 건 의미도 없고 의지도 없는 타율적 삶, 즉 죽은 삶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래서 내친 김에 생각의 끈을 더 이어본다. 꽃은 왜 피어나는가?
아마 ‘생명에의 의지’일 것이다. 대를 이어 생존, 번식, 번창하고 싶은 욕망에의 의지가 있기에 꽃은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마이클 폴란의 저서 『욕망의 식물학』은 사과, 튤립, 대마초, 감자 등의 생존, 번식을 위한 끊임없는 욕망의 몸부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적응과 진화를 위해서는 생존과 번식이 필수이기 때문에 곤충을 비롯한 동물과 인간의 눈에 들기 위해서 필생의 전략과 스크럼을 짠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꽃가루를 멀리 보내야만 생존, 번식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에 꽃들은 자기 자식을 되도록 멀리 보내려고 한다.
그래서 단풍나무의 씨는 비행물체의 흉내를 내면서 산들바람을 타고 천 리를 가고, 물봉선은 일부러 정 떼는 사람처럼 화를 내며 몸을 터뜨려 자식들을 멀리 날려 보낸다는 것이다.
물론 동물들의 등에 업혀 멀리멀리 이동하는 식물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땅에 외국식물들이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게 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어쨌든 문제는 식물들의 자율적 의지가 생존, 번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식물과 인간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식물에게도 ‘자율적 의지’가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설명이다.
일상의 덧없음에 문제의식을 던지는 것은 ‘왜 사는가?’와 더불어 ‘자율적 의지가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직면해서 잠시 ‘머무름’의 시간을 갖는 일은 잃어버린 의지와 의미를 회복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여가 지난 것 같은데 그날이 그날 같은 묵은 향기 속에 살고 있다면 이미 지쳤다는 뜻이 아닐까.
‘의지’도 ‘의미’도 없는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건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반성과 성찰은 ‘머무름의 기술’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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