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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책에서 저자 로버트 풀검은 "손을 꼭 잡고 서로 의지해라,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져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해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깨끗이 치워라"와 같이 유치원에서 자주 들었을 법한 말들을 상기시킵니다.
독일에서 상사주재원으로 수년간 살다 돌아온 지인의 말을 들어 보면 독일 유치원이야말로 이 책 제목에 꼭 들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처럼 학습 능력을 키워 주기보다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 적응 훈련을 더 시킵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놀이 후 정리 정돈하기, 놀이기구 이용할 때 차례 지키기, 하루 일과표 따라 하기 등 살아가며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버릴 휴지통이 없으면 쓰레기를 하루 종일 손에 들고 다닙니다. 독일의 운전자들은 빨간 신호등을 엄격히 지키는 것은 물론 정지선을 넘는 법이 없습니다. 이는 신호등의 위치와 높이가 정지선을 넘어 정차하면 신호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끔 시민의 질서의식 결여를, 위반하는 특정시민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만 하는 공직자들을 접할 때마다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왜냐 하면 국민들도 유치원생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회, 그 환경이 가르치는 대로 따라 한다는 점에서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 제주도를 예로 들어 볼까요? 12번 일주도로에 좌우로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데도 빨간 불이 계속 켜져 바뀔 줄을 모릅니다. 여기서 보통 사람들은 법을 위반하는 습관을 기릅니다.
좌우를 둘러보고는 그대로 진행을 하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스마트"의 시대인데 교차로마다 간단한 전자인식 장치를 달아 놓아 사방의 차량 운행상황을 감지하게 만들면 될 일입니다.
초등학교 바로 옆의 어린이 놀이터에도 어른들은 담배꽁초, 아이들은 과자 봉지, 쓰레기가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쓰레기 통이 없습니다. 휴지통이 보일 때까지 쓰레기를 손에 들고 다니라는 주문은 무리지요.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제주도의 어느 해변에서 보았습니다. "쓰레기는 반드시 종량제 규격 봉투에 담아 버리라"는 경고 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을 뿐 정작 쓰레기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네 안에 있는 클린하우스(분리수거용 대형 쓰레기통들을 놓아두는 장소)는 너무 멀어 보이지 않습니다. 관광객들은 사용한 휴지나 마시고 남은 음료수들을 잔디 위에 그대로 버리고 갑니다.
관광 온 손님들에게 동네 가게에서 종량제 봉투를 사서 쓰라는 요구, 또는 쓰레기를 휴지통이 나타날 때까지 들고 다니라고 주문하는 것은 부당하겠지요.
법을 지키도록 가르치려면 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법을 엄격히 집행해야 합니다.
주위에 일주도로 교차로 신호위반으로 범칙금 통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단속의 손길이 못 미친 것일 수도 있지만 혹시 딱지를 발급하기 시작하면 신호등의 불합리한 운영을 비난하는 원성이 쇄도할 것을 겁낸 것이 아닐까요?
법의 집행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의무입니다. 악법이라면 더욱더 그것을 곧이 곳대로 집행하여야만 그 불합리한 면이 들어나고 또 그것이 들어나야만 개선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근의 여러 해 동안 유럽을 휩쓸고 있는 재정 및 금융 위기 중에 유독 독일이 승승장구하며 유럽의 강자로 무섭게 대두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서 독일 모델을 라인강의 이름을 따서 "라인 캐피털리즘"이라고 부르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 독일인의 질서의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인의 이런 질서의식은 18세기 초 중반에 걸친 프로이센 왕국의 교육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검약, 근면, 용맹 외에도 "타인에게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 하라"는 말로 요약되는 훈육의 정신을 전국민 의무교육을 통해 전국에 확산시킨 것입니다.
사람중심, 지식중심, 환경중심의 국제자유도시 건설이라는 거대담론도 물론 중요하지만 "악마는 항상 작은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의외로 빠를 수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 출발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가 그 선두에 서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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