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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영란 시인 |
한라봉을 수확하는 어머니는 열매가 맺혔던 가지를 되도록 길게 자르라 한다.
혼자서 과수원을 하는 어머니가 봄에 많은 전정을 한꺼번에 하기에 벅차서 전정을 겸하면서 수확하는 독특한 작업 방식이다.
나무의 수관(樹冠)이 어쩌고 수형(樹形)이 어쩌고 게다가 원예학적인 전문 용어를 써가며 나무의 지상부와 지하부의 비율을 일컫는 T/R율(Top/Root Ratio)이 어쩌고 얘기를 해보지만 어머니의 오랜 과수 재배 경험의 내공 앞엔 속수무책이다.
수종마다 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나무를 옮겨 심는 시기는 11월 초부터 3월 초까지로 뿌리의 생장이 중단되는 휴면기인 이 기간에 나무를 옮겨 심어야 나무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옮겨 심는 나무에 전정을 하는 이유는 지상부와 지하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다. 내가 어머니 앞에 잘난 척 읊조리는 T/R율의 비율이라는 거다.
옮기는 과정에서 잘려나간 뿌리의 양만큼 가지를 강하게 잘라주지 않으면 뿌리에서 빨아 들이는 양분과 수분에 양이 가지보다 적어서 수급불균형이 초래된다. 그러면 나무들은 생육이 어려워 말라죽거나 과도한 증산작용으로 인해 수분스트레스 피해가 생겨 활착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나무들은 지상부와 지하부의 균형을 스스로 조절한다. 자신의 몸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잎을 떨구고 가지의 일부도 조절한다.
휴면기가 지난 나무는 봄이면 새로운 뿌리를 내리며 꽃과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무가 견뎌내야 하는 과정은 실로 험난하다.
나무들 조차 이렇듯 옮겨 심으면 몸살을 앓는데 사람 이라고 별반 다를게 없다.
2월은 “옮겨 심는 달”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졸업을 하고 새로운 자리로 옮겨 앉는 달이다. 낯익은 것들과 헤어져 새로운 곳에 섰다면 균형을 찾기까지 험난한 과정이 있을 것이다.
몸살을 앓아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그런 과정이 회의가 들고 지쳐 쓰러질 수도 있다.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것처럼 패기만만하게 교문을 박차고 나섰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당황스러울 것이다.
세상이 나를 맞춰 주는게 아니라 내가 세상에 맞춰 가야 하는 시기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다. 세상과의 균형이 필요할 때, 내 뿌리와 가지를 스스로 잘라내야 하는 강(强)전정의 시기인 것이다. 이 시기를 잘 넘겨야 꽃이 피고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빗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미국 작가인 비비언 그린의 얘기다. 계획대로 안 된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의기소침 하지 말자. 꿈꾸는 것이 가능하면 그 꿈을 실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잘 할 것이다, 잘 이겨낼 것이다’라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도약으로 삼자. 어둠이 내리면 별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비가 내린다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우산을 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끝없는 절망은 없다. 필요없는 고통도 없다. 다만, 지금이 가장, 오늘이 가장 열심히 할 때 만이 있을 뿐이다.
봄이다. 이제 가슴을 열자. 곰실대는 작은 실뿌리가 내 안에서 자라나 새순을 밀어 올릴 때까지. 하나하나의 삶은 모든 순간이 특별하다.
“많은 사람이 기회를 놓치는 이유는 기회라는 것이 대체로 뼈를 깎는 노력이라는 작업복을 입고 오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에디슨의 말처럼 옮겨 심겨진 그대들이여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마침내 균형에 이르러 눈부신 인생과 마주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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