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화공원. 박미예 기자

동네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 게이트볼을 치고, 부부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 함께 잔디밭을 뛰놀며 연을 날린다. 관광객들은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며 마음을 치유하고, 비(碑)에 새겨진 시를 감상하며 제주를 느낀다. 여유로운 한때, 서귀포칠십리시공원의 주말 풍경이다.

서귀포시 서홍동의 삼매봉 부근에 위치한 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해위험지구였으나 지난 2008년 서귀포시가 재해위험지구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서귀포칠십리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서귀포칠십리시공원은 산책로뿐만 아니라 넓은 잔디밭, 운동기구, 놀이터 등이 구비돼있어 시민들이 운동, 산책을 목적으로 많이 찾고 있으며, 작가의 산책길(유토피아로)로 지정되는 등 주변 관광 인프라와 연계되면서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고 있다. 작가의 산책길은 이중섭미술관과 동아리창작공간, 기당미술관, 칠십리시공원, 자구리해안, 서복전시관, 정방폭포, 소라의성, 소암기념관을 잇는(4.9km) 서귀포의 문화 탐방 코스다.

서귀포칠십리시공원을 들어서면 너른 잔디밭 산책로를 따라 세워진 시비(詩碑)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비에 새겨져 있는 시들은 하나같이 정감 있는 서귀포의 풍경을 담고 있다. 그 중 한기팔 시인의 '서귀포'라는 시를 소개해본다.

마당귀에
바람을 놓고

귤꽃
흐드러져
햐얀 날

파도소리 들으며
긴 편지를 쓴다

이 공원의 시들은 서귀포시가 서귀포칠십리시공원을 조성할 당시 서귀포문인협회에 의뢰해 선정한 작품들이다.

칠십리시공원을 처음 찾은 주민 이 모씨(52)는 “주위에서 칠십리시공원이 산책하기 좋다고 하길래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오늘 시간이 나서 왔어요. 그런데 와보니까 정말 좋네요. 분위기 있게 시도 읽고 산책도 하고, 경치도 감상하니까 마음에 안정이 오는 것 같아요.”

시를 감상하며 청둥오리가 노니는 연못을 지나면 통나무로 지어진 집이 나온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작가들이 설치해둔 미술 작품과 사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곳에는 천연사후를 각색한 작품과 2012마을미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골갱이, 돌, 나무, 도롱이 등을 사용해 완성한 '숨-밭', 김백기 퍼포먼스아티스트의 활동 사진인 '몸과 마음으로 풀어놓은 서귀포 잔상' 등이 마련돼 있어 시와 함께 미술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다.

“이 물고기 살아있는 거야?”
“캉캉!”

시민 한 모씨(35·여)는 가끔 애완견 두 마리와 아들, 딸을 데리고 서귀포칠십리시공원으로 산책을 나온다. 아이들은 연못을 구경하며 노는 데 한창이다. “서귀포시에는 애완견과 애들이 함께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서귀포칠십리시공원은 잔디밭도 넓고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어서 다 같이 찾기 좋은 곳이에요.”

▲ 폭포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지연폭포. 박미예 기자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온 후지코 히로우치(45·여)씨 등 세명은 제주도 여행 첫날 칠십리시공원을 방문했다. 후지코씨는 “원래 오늘 서귀포의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친구들과 함께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오늘 대형마트가 쉬는 날이라 계획이 취소돼서 침울해있었는데, 여행 가이드가 천지연폭포를 추천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천지연폭포로 향하던 중 우연히 서귀포칠십리시공원에 오게 됐는데 공원에 마련된 폭포전망대를 통해 천지연 폭포를 잘 구경했어요.”라며 생긋 웃었다. 그들은 칠십리시공원 내의 잔디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들을 열심히 사용하며 “일본은 이런 운동기구를 쓰려면 체육관에 가서 돈을 내야해요. 공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이곳은 무료로 운동기구를 쓸 수 있어서 신기해요”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서귀포칠십리시공원은 눈쌓인 한라산과 만발한 매화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한일 우호 친선 매화공원', 천지연폭포 및 새섬 전망대, 휴식공간과 체육시설을 갖춘 '만남의 광장' 등이 조성돼 있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시를 읊으며 산책하는 여유를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