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강희경 제주한라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
봄의 花信이 올해는 부쩍 이르다. 경이로운 꽃 소식에 얼마간 울적하고 불만에 차 보냈던 지난 계절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간에, 겨울나무들은 심술궂은 무의미로 무장한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 겨우내 모든 것을 다 잃고 떠나보내야 했었다.
우람했던 나무들은 그 어이없는 슬픔마저도 잃어버린 듯 앙상하고 둔감해져 있었다. 이제, 겨울나무 가지의 굳은살은 눈을 찌를듯 따가운 햇살이 벗겨내어, 그 아픔 위에 갓 돋은 살갗에서는 수줍은 색깔의 꽃망울을 찬란하게 터트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놀라운 화신이 당도하자, 어느 누가 먼저 기다리고 있다거나 그립다고 청한 것도 아니었는데, 누구든 황홀경에 빠지고 만다. 화신이 전해준 이 화용월태의 가물은 우리의 구곡간장을 절절히 태우고는 생명의 계절에 어지간히도 둔감했던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계절은 간다는 뜻일까? 화신은 어느 새 뜻 모를 물음표 하나 꽃 진 자리에 걸어놓고 홀연히 떠날 것이란 걸 우리는 안다. 언뜻, 꽃이 피고 지는 일이 이렇게 허랑하기 짝이 없다 싶지만, 이는 기실 삶과 죽음의 신비를 포착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인다.
꽃이 피고 지는 일에 경계가 없듯, 삶이 죽음의 일부일 수 있고 죽음이 삶의 일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생사 태어나고 죽는 일이 꽃이 피고 지는 일보다 더 대단할 게 없다고 얼마나 많은 현자들이 가르쳐주었는가.
다만, 삶이란 순간을 살며 우리가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존재들과의 관계 때문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며, 생살을 찢는 고통의 이별 같은 비정한 시간이 그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 뒤에는 결국 삶도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늘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
‘오즈의 마법사’를 쓴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자신이 쓰던 서류용 선반의 첫 칸은 A부터 N까지고 두 번째 칸은 O부터 Z인 것을 보고 ‘Oz'를 상상의 나라를 위한 이름으로 적격이라고 생각하여 마법사의 이름을 ’오즈‘로 지었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우리의 두 번째 칸에는 어떤 삶의 꿈을 담아둘까?
삶은 길이며 꿈이다. 처음과 끝이 전부 다 바라다 보이는 길이면 살 맛 나겠는가? 앞과 뒤를 가지런히 꿰일 수 있는 꿈이면 행복하겠는가? 재미와 품위를 아울러 지니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나 삶의 오의를 풀어낼 수 있는 시시한 군더더기 하나 없는 길몽이면 어떻겠는가?
감동에서 금새 깨어나기 싫은 달콤한 꿈같은 삶도 있긴 하겠다. 오래도록 고된 길을 가다가 어느 하룻밤 한바탕 황홀한 꿈이라도 꾼다면 그 모든 것을 보상해 주기라도 하겠다.
기성의 가치관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윤리와 교양인양, 역시 비슷한 부류의 동반자들을 만나 기성과 동일한 미래에 무심과 둔감으로 안주하는 삶을 꿈꿀 수도 있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안정되고 확실한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의 목적지에서 사랑과 지혜와 용기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챈다면 당장 박차고 나올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과 겁쟁이 사자와 같은 정말 다른 부류의 동반자들과 함께, 그가 새로 향하고 있는 길엔 미지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애처로운 일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알아두어야 할 것은 길이든 삶이든 언제나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은 바로 그 미지의 장막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감히 그 미지로 나아가는 것은 깨어있는 의식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영어로 삼월은 March, 행진이란 뜻이다.
삼월은 새로운 꿈을 안고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행진의 계절이란 뜻이다. 시절이 하 수상한데도 생명의 꽃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우주가 열리는 시간에 맞추어 눈을 뜬다. 자, 이제 우리도 눈을 뜨고 꽃망울 터지는 소리에 맞추어 거침없이 미지의 나라로 행진!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