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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제주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
얼마 전 소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경기 중계방송을 보느라 달콤한 겨울 밤잠을 여러 번 설쳤다.
다른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동계 스포츠의 특성에서 특히 요구하는 문화적 배경과 자연 환경, 스포츠 인프라의 한계를 재치고 훌륭한 기량을 세계에 선보인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저 고맙기만 할 뿐이다.
멀리 러시아의 한 도시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 경기와 이벤트는 전 세계인이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이자 현대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또한 스포츠과학, 스포츠테크놀로지라는 말이 나오듯이 스포츠는 더 이상 타고난 힘과 순발력으로 승부하는 게 아닌, 여러 방면에 걸친 과학적인 접근과 훈련, 기술의 도움으로 하는 융합적인 활동임을 필자를 포함한 범인들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최근 스포츠를 통하여 발휘될 수 있는 인간의 생체 역학적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견도 나오는 가운데에 선수들이 입는 스포츠웨어와 장비에서 과학과 첨단기술의 역할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이제는 피부로 느껴오는 시점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의류학계와 관련 산업에서는 이미 익숙한 얘기지만, 올림픽과 같은 첨단 스포츠의 장에서 스포츠웨어가 선수들의 경기력과 운동수행능력에 물리적·정신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자 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33개의 수영 금메달 중에서 25개를 전신수영복을 착용한 선수들이 가져감으로써 화제가 되었는데, 이는 생체모방기술(bio-mimetics)이 스포츠웨어에 적용된 한 예이다.
엄청난 무게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상어의 수영 실력의 비결은 피부 비늘의 요철이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켜서 오히려 물의 저항을 감소시킨다는 발견에서 나온 것이다.
골프 애호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매끈한 표면의 골프 공보다는 적절한 형태와 크기의 홈(딤플)이 있는 골프 공이 공기 저항을 줄여서 더 나은 비거리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과 상통한다.
전신수영복이 소개된 이후 세계 수영 신기록들이 대거 배출되었는데, 인간 신체 기능보다는 수영복에 의존한다는 비판이 일어서 2011년도부터 세계 공식 경기에서 전신 수영복을 법적으로 금지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세계 수영 신기록은 급격히 감소하여서 수영복이 수영선수들의 기록갱신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더욱 확신시키는 셈이었다.
동계올림픽 경기의 스포츠웨어에도 어김없이 첨단과학 기술이 숨어있다. 1984년 2월 22일 우리나라 모 일간지에는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의 알파인 스키경기 금메달리스트가 입은 스키웨어가 특수한 천으로 특수하게 재단 봉제된 마법 같은 스키복이라고 떠들썩하게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한 단어를 반복하여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이 신비한 기술은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대부분의 경기복에 적용되었을 만큼 스포츠 경기는 선수들의 개인 기량뿐 아니라 선수가 착용하는 스포츠웨어에 사용되는 각종 첨단 기술 각축의 장이라고 할 만해졌다.
한 국가의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복은 세계 최대 무기회사이자 첨단소재 제조사가 제작한 공기저항 최소화한 직물로 제작되었는가 하면, 레이저 커팅과 무봉제/무시접 웰딩(stitchless/seamless welding)으로 지퍼를 잠그면 여밈새가 전혀 보이지 않아 공기저항이 줄고 경기복이 선수의 움직임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소는 최대한 제거하였다.
어느 드라마에선가 장인의 한땀 한땀 정성 어린 바느질로 묘사된 훌륭한 옷의 비결이 스포츠웨어에서는 사뭇 다르다.
쇼트트랙 경기복은 빙상과의 마찰로 인한 선수의 신체 상해를 방지하기 위해 방탄 소재로 제작되기도 하며, 이상화 선수가 착용한 경기복은 컴퓨터화된 인체공학 기술로 선수의 팔의 움직임과 버릇까지 체크하여 가장 편안한 움직임을 제공하는 세상에서 단 한 벌 밖에 없는 첨단 개인 맞춤복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첨단 과학 기술들이 동원된 스포츠웨어는 국가대표선수들만 입는 것일까? 우리 대중과는 거리가 먼 남의 옷들일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필자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패션의 첨단 기술은 우주개발과 군사 영역에서 스포츠 분야로, 그리고 마지막에 대중으로 전해진다”라고 얘기하곤 한다.
프로 선수들이 착용한 하이테크 스포츠웨어는 그 사양을 다소 낮추어 대중용으로 재탄생하여 소개되고, 이를 착용하는 대중은 심리적 만족감과 함께 스포츠에서의 개인적인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전신수영복은 전문 선수들의 경기용으로는 착용이 금지되었으나, 수영복 직물 표면에 상어비늘의 요철무늬를 적용하는 이른바 첨단 수영복의 테크닉을 시각화한 마케팅 전략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서 입고 있다.
또한 2012년 우사인 볼트가 런던 올림픽 우승 때 신었던 러닝화는 원래는 자메이카선수들의 동작과 발 형태에 맞추어 특별히 제작되었던 것이나 올림픽이 끝난 후에 대중적인 제품으로 출시되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패션과 스포츠는 꿈과 욕망 추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 전문선수들은 혹독한 훈련과 체력, 재능을 바탕으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선망의 기쁨과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나아가 그들이 착용한 하이테크 스포츠웨어는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기여하는 데에 그 역할이 그치지 않는다.
대중은 스포츠 스타들의 성공을 지원한 첨단 하이테크 스포츠웨어를 마음껏 즐겨 입어봄으로써 스포츠 퍼포먼스의 성취와 욕구 충족을 얻을 수 있다. 전문 선수들이 규정에 따라 착용 못하는 첨단 기술 스포츠웨어마저 대중에게는 허락될 수 있다. 패션과 스포츠가 상생해 가는 한 가지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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