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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을 벌인다고 하는데 우리 집 차는 1997년 형 기아 자동차로서 금년 들어 18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누적 운행거리가 30만 킬로미터에 육박하지만 엔진은 멀쩡해서 수시로 잔 고장을 수리해 가며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충격흡수장치가 노쇠해진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험한 길을 다닐 때는 조심 운전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차체가 바닥에 "쿵"하고 닿게 되어 소리도 요란할 뿐 아니라 차의 어디가 부서지는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 차 앞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과속방지턱은 야속한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턱을 넘을 때는 시속 30 킬로미터로 감속을 해도 덜컹거림이 심합니다.
제주국제공항 구내의 과속방지턱을 세어 보았습니다. 가운데 주차장 안에만 열 개가 넘고 그 둘레를 도는 아스팔트 위에도 수 많은 과속방지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제주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의 공통적인 현상인 것 같습니다. 인천이나 김포 공항은 물론이고 도심이나 시골 한적한 길에 까지 도처에 과속방지턱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 나갈 일이 있으면 유심히 과속방지턱을 조사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은 물론 일본이나 호주, 태국, 홍콩 등을 포함해서 입니다. 결론은 "한국처럼 과속방지턱이 많은 나라는 없다"입니다.
과속방지턱을 볼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스쿨 존 초입 또는 백화점 주차장의 주차 티켓을 뽑기 직전 한번 정도입니다. 일반 도로 상에는 극히 드물게 과속방지턱을 목격합니다. 운전자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옆 골목이 있다던가 하는 경우 운전자의 주의환기를 돕기 위해 만들어 놓는 것들이지요.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과속방지턱을 만드는 목적이 서로 다르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저들은 운전자를 돕기 위해 만들었고 우리는 운전자를 단속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단속이 목적이라면 위반하는 자를 가려내는 것이 올바른 단속입니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자나 그렇지 않는 자나 똑같이 일정한 물리적인 장애를 거치게 만드는 것은 단속이 아니라 단속의 포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속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인력이 부족하다면 무인 단속장치를 설치해도 될 일입니다. 스마트 시대에 과속방지턱을 세워 놓고 과속운전을 막겠다는 것은 석기시대의 발상입니다.
우리를 찾는 관광객들은 즐비하게 깔려있는 과속방지턱들을 보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요? 말로 해서는 교통법규를 안 지키는 나라, 이런 것을 이렇게 많이 세워 놓지 않으면 제한 속도를 지키지 않은 나라라는 은밀한 사실을 그들에게 들켜 버린 것은 아닐까요!
심리학에 "액션 바이어스"(Action Bias)라는 용어가 있다고 합니다. 번역하면 행동편향(行動偏向), 즉 가만히 있으면 더 잘 될 수도 있는 경우에도 무언가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아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라고 할까요?
축구 페널티 킥의 경우를 예로 듭니다. 과학적으로는 골 키퍼가 골 포스트의 중앙을 지키고 있다가 골을 막아내는 확률이 가장 높은데도 그렇게 하는 골 키퍼는 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좌측 또는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가 골을 먹는 경우와 가만히 서있다가 골을 먹는 경우를 비교하면 액션 바이어스가 생기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과속방지턱도 액션 바이어스의 산물인지도 모릅니다.
교통안전도 순위를 보면 OECD 32개국 중 우리나라가 30위로 거의 바닥입니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자동차 1만대 2.4명 꼴이라고 합니다. 제주도 자동차 수를 30만대로 잡았을 때 72명이면 전국평균인데 실제로는 92명(2012년 통계)으로 우리나라 평균보다도 열악합니다.
과속방지턱을 더 만들어야 할까요?
역발상으로 제주특별자치도가 과속방지턱 철거에 앞장설 것을 제안합니다. 도로구조와 교통표지를 개선하고 각종 단속을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하니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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