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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렬 시인 |
어떤 사람이 높은 나무에 올라가 발로 나뭇가지를 밟지 않고 손으로 잡지도 않고 오직 입으로 문 채 매달려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나무 밑에서, ‘당신이 그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뜻은 무엇입니까?’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할까.
대답하지 않는다면 물음을 저버리게 되고 대답하면 떨어져 죽을 것이다. 가령, ‘나는 떨어져 죽지 않기 위해 물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는 순간 땅바닥이나 날선 바위로 떨어지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반대로 죽음이 두려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질문자에 대한 결례다. 한 마디로 당신은 긴박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
어릴 때 친구와 함께 바다로 간 일이 있다. 밀물 때여서 그 넓은 바다에는 오직 우리 둘 뿐이었다. 목표점을 정한 뒤 친구가 먼저 헤엄쳐갔고 나는 뒤따랐다. 뒤따라가던 나는 느닷없이 오른발이 삐끗하며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건너편에 다다른 친구는 텀벙거리는 내가 장난치는 줄로 알고 깔깔거리기만 했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순간, 구조 요청을 포기해버릴까 하는 묘한 반발심리가 작동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보나마나 죽음이다. 곧 생각을 바꿔 살아나는 쪽을 선택했다. 살려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친구의 안색이 돌변하면서 곧 헤엄쳐와 나를 구해냈다.
썩 시원스러운 예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짧은 찰나에도 나는 어느 쪽인가를 선택해야 했다. 혹자는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나는 쪽을 선택하는 일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그러나 실제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일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찰나라 할지라도 의식의 저 한끝에는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기 때문이다.
어쩌면 선택이라는 것은 생사의 갈림길과 같다.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있는 저 사람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알 수 없다. 순전히 그것은 그의 마음이다. 앞서와 같은 상황 속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살아남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도 순전히 나의 마음이다. 우리는 때로 타인의 선택을 마지못해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나의 선택을 양보해버린 것이다. 물론 세상은 나의 선택대로만 살아갈 수는 없다.
사회공동체 속에서의 나는 나가 될 수 없는 때도 있으니까. 때로 다른 사람이 되어주기도 해야 하니까.
허나, 내가 어떤 일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순간이 있다. 그것은 나의 주체적 의지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잘못 선택했을 때, 죽지는 않았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제대로 선택했을 때, 죽었으나 살아있는 삶을 살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선택, 그런 선택의 순간이 우리 앞에 가로 놓일 때가 있다.
이 순간 나는 어떤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선택은 어느 정도 마음을 비워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물이 꽉 찬 그릇에는 그 욕망의 과잉 때문에 더 이상 올바른 선택이라는 새로운 물을 담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욕망은 오래 되어서 부패의 조짐마저 보인다. 오래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번 썩은 물은 그 저면에 늘 불순물을 지니고 있어서 정화한다할지라도 얼마 없어 다시 오염되기 십상이다.
알지 못하는 그대에게 한 마디 묻고 싶다. 그대는 입에 물고 있는 나뭇가지를 떨쳐내고 질문자의 질문에 대답하겠는가, 아니면 결례를 무릅쓰고 끝까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있겠는가?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그대의 자유다.
그러나 생사(生死)를 가르는 선택은 등골이 서늘하도록 신중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은 필경 자신을, 타인을. 세계를 헤어날 수 없는 저 깊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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