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제주시 도두동 인근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바로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이다. 친구, 연인, 부부,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 민속오일시장으로 몰려온다. 오일시장 열리는 날과 주말이 겹치는 날엔 나들이 장소로도 제격이다. 오일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보면 완연한 봄을 실감할 수 있다.
 
냉이, 달래, 쑥 등 봄나물과 무, 배추, 파 등 직접 가꿔 팔러 나온 할머니들의 인심좋은 얼굴로 손님들을 대한다. 장터 초입길엔 드문드문 과일 장수들이 미리 터를 잡아 손님 끌기에 안간힘이다.

제주시에는 매월 5일 간격으로 정해진 날짜에 열리는 3개의 민속오일시장이 있다. 제주시민속오일시장, 한림민속오일시장, 세화민속오일시장. 이 중에서 제주시민속오일시장은 도내 재래시장으로는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시장이다.

1990년대로 들어서서 여러 지역의 오일시장들이 사라지게 되자 과거의 전통을 살리고 서민들의 활발한 움직임을 반영하기 위해 ‘민속오일시장’으로 명명하게 됐다. 물류 유통의 중심지이자 전통 풍물을 향유하는 곳으로서의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도내 오일장은 1906년 윤원구(尹元求) 군수가 부임해 오면서 도민들의 원활한 물자 유통을 위해 당시 제주읍 내를 비롯해 이호, 외도, 애월, 삼양, 조천, 김녕, 세화, 서귀포 등 9개 지역에 오일장을 개설한 것이 효시가 됐다.

당시 오일장 개설은 여러 농어촌 마을까지 상거래가 활발해지는 계기를 마련했고, 농민들이 오일장을 통해 직접 생산한 생산물을 판매하고 필요한 생필품을 구매하는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현재 제주시민속오일시장에는 총 976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별도로 운영되는 곳으로서, 65세 이상 노인들이 지역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배려한 ‘할망장터’, 정식 인가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들이 이동하며 판매 활동을 벌이는 ‘유동부(流動部)’ 등이 있다.

각종 나물 모인 전시장 같아

봄날의 민속오일시장은 여느 장터와 비슷하다.

고개를 불쑥 내민 각종 나물들로 봄기운이 왕성하게 감돈다. 산과 들녘에서 자라나 비타민과 미네랄을 듬뿍 머금은 봄의 전령사인 셈이다. 바구니에 수북하게 담긴 냉이, 텃밭에서 자란 풋마늘, 새하얀 뿌리가 입맛을 돋우는 달래는 보기만 해도 생기가 느껴진다.

봄볕을 받으며 손톱 끝이 검게 물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콩을 까는 할머니의 손길은 바지런하기만 하다. 할머니의 손끝에서 변신한 매끈 토실한 콩이 금세 팔려나가자 할머니의 쌈지주머니가 불룩해진다.

봄나물 곁은 으레 지난 해 거둬들인 잡곡과 고사리, 무말랭이, 참기름, 들기름, 고추 등 양념거리들로 푸짐하다. 일명 할망장터의 풍경이다.

어디 할망장터 뿐이겠는가. 짭짜래한 향이 묻어나는 건어물 코너엔 젊은 남자 주인장의 장사 수완이 심상치 않다. 김, 쥐포, 마른 오징어… 손님들이 손에 쥐기만 하면 팔린다. 주인장의 걸쭉한 말솜씨가 절로 군침돌게 만든다.

여중생들의 장터 나들이도 눈에 띈다. 짝퉁 츄리닝을 구입하러 왔다고 한다. 올망졸망 앙증맞은 재잘거림이 귀엽다. 옆 점포에선 ‘물건이 좋소, 아니요’하며 상인과 손님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도 벌어진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입구 길목에선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과 학생들의 설문조사도 이뤄지고 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이 올 것같아 이곳을 택했단다.

이외에도 어시장과 동물코너, 약재코너 등엔 사람들로 북적인다. 수목코너엔 계절에 맞게 행운목, 다육류, 허브류 등 온갖 꽃 묘종으로 가득하다.

정이 묻어나는 곳

이곳을 찾은 한 시민은 “날씨도 좋고 주말이라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며 “이곳에 오면 사람 냄새가 나서 일부러 찾는다”고 말했다.
또 딸과 이곳을 찾은 어떤 주부는 “이곳에서는 대형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정이 있다”며 “흥정하며 물건을 사는 재미도 있고, 특히 채소 종류는 싱싱하고 저렴하기까지 하다”고 말을 건넨다.

서민들의 치열한 삶이 오롯이 베어 있는 곳. 삶이 힘겨울 땐 이곳 민속오일시장에서 왁자지껄 보통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아 가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