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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이 귀한 시절, 걸어 다니는 것을 아이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등교시간이 되면 하나 둘 짝을 지어 등교하는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고, 마을은 생기가 돌았다. 학교까지는 아이들 걸음으로 40∼50분 거리였지만 길이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당연히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아침시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바쁘다.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한 경쟁이 집중될 때이기도 하다. 등교시간에는 특별한 일을 할 겨를이 없었지만 어느 날 아침은 특별했다.
겨울이었다. 학교로 향하고 있는데 눈길 위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동전이었다. 그것도 백원짜리가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일부러 그렇게 나열해 놓은 것처럼 나란히 눈 위에 놓여 있었다.
백 원이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뽀빠이 과자를 몇 개는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다. 백원짜리가 그저 떨어진 것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일부러 진열해 놓은 듯 나란히 길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그냥 떨어졌다면 눈 속에 묻혔겠지만 동전은 하늘을 향한 얌전한 모습이었다. 그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기억은 지워졌지만 하얀 눈길 위에 또렷이 박혀 있던 백원짜리 동전이 주었던 놀라운 횡재는 가끔 출처가 궁금해지곤 한다.
꿀을 채집하는 시기였다. 등굣길에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꿀 통을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난 후 난리가 났다. 벌이 아이들을 공격한 것이다
머리로 얼굴로 몸으로 벌은 사정없이 침을 놓았다. 트럭은 이미 지난 후였다.
몇 몇 아이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머리에 혹이 몇 개씩 났고, 얼굴이며 몸이 벌의 공격을 받은 징후들로 가득했다. 큰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었고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서로를 보며 참 많이 웃었었다.
지금 같으면 병원으로 달려가고 난리가 났겠지만 지네나 벌에 물렸을 때 소변으로 간단하게 치료하는 치료법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교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비포장 길을 삼삼오오 짝을 지으며 돌아왔다. 클로버가 무성할 때면 클로버 꽃을 따서 목걸이나 반지, 화환을 만들었다. 네 잎 클로버를 누가 먼저 찾는지 시합을 벌였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인 것을 알기 전까지 네 잎 클로버를 찾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아카시아 잎이 무성할 때면 잎을 따서 게임을 했다. 아카시아 꽃을 따서 먹기도 하고 집에서 기르는 토끼를 위해 잎을 따다 주었다.
산딸기가 익는 계절이면 아이들은 숨겨둔 보물을 찾듯 풀숲이나 덤불을 헤치며 자연이 주는 간식을 찾아 나섰다. 청 미래 덩굴 순, 찔레 순, 청 미래 열매, 머루…… 등.
산에 들에는 자연이 주는 간식이 널려 있었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간식을 찾는 것에 아이들은 이미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하교 길에 버스를 만나는 일이 있다. 마음씨 착한 버스기사가 버스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공짜로 버스를 태워주는 날은 아이들에게는 매우 운 좋은 날이 되었다.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났다. 아이들의 얼굴이 해바라기처럼 환해지고 버스기사는 기쁨으로 빛나는 아이들의 감사의 인사를 덤으로 받곤 했다.
수많은 길을 지나왔다. 선택의 기로에서 후회와 갈등을 겪을 때도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중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처럼.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 있는 길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비포장 길은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 도시화 되어갈수록 확장과 포장을 거듭하고 있다.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와 초고속 통신시설이 시간을 단축시켜주어도 우리의 여유는 예전만 못하다.
소 걸음걸이마냥 여유로움으로 길을 걷는 대신 바쁜 일상을 메우기 위한 지름길을 찾는 것에 급급해졌다. 울퉁불퉁한 길을 걷는 것은 자연 느려질 수밖에 없다. 발 디딜 곳을 이리저리 살피며 튀어나온 돌부리를 피하고 걸려 넘어질 일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때론 미끄러져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던 길, 눈물과 한숨과 웃음이 함께하던 울퉁불퉁하고 구부러진 길을 지나왔다. 포장이 잘 되었다 하더라도 곡선과 직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기에 여유를 갖고 반성과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길 위에 있다. 우리는 지금 그 길의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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