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강은미 시인 |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보름 째, 아직도 생사를 모르는 실종자가 109명에 이른다. ‘전국민이 트라우마’라는 타이틀이 걸린 뉴스가 보도될 정도로 지금 대한민국은 무너진 가슴 위에 또 돌덩이를 얹은만큼 답답하고 침통한 상태다.
눈 앞에서 아이를 잃고, 가족을 잃은 우가족의 슬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아직 생사도 모르는 가족들은 또 어떻고.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에 동참하고, 마음으로 무사귀환을 빌어보지만 아무래도 뭔가 부족하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죄책감만 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이런저런 미담 소식도 더러 들린다. “지금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지어주는 것뿐이네요.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유가족들을 위한 ‘밥봉사’에 나선 한 아주머니의 말이다.
만사 제쳐두고 현장으로 달려가 마치 유가족의 이모나 동네 아주머니가 되어 기꺼이 밥을 지어 건네고 있다. 아이를 잃고, 가족을 잃고 어찌 밥이 넘어갈까마는 산 사람은 살아야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나마 고맙고 아름다운 일이다.
주말에 세이레 극단에서 하는 <밥>이라는 연극을 보고 왔다. 봄비 치고는 제법 쌀쌀하고,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저녁이었다. 날씨가 궂다는 건 실종자 구조가 더욱 더디어질 것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기에 착잡한 마음으로 연극을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국에 연극관람이라니, 사실 미안함이 보태져서 더욱 무거운 발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을 보고 나오는 발걸음은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처럼 가벼워졌다. ‘밥’을 통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극 <밥>의 내용은 간단하다. 윤정이라는 여인은 결혼도 하지 않지 않고, 신부의 식복사가 되어 밥 지어주는 일을 한다. 부모를 잃고 슬퍼하는 윤정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 “할 수 있는 뭐 있느냐?”는 질문에 윤정은 “밥 짓는 일은 잘한다.”는 대답을 한다. 그래서 신부가 그녀에게 식복사 일을 허락했던 것이다.
그렇게 인연이 된 두 사람은 신부가 치매에 걸려 수도원에 가게 될 때까지 이어진다. 이를 두고 세간의 시선은 음흉스러울 수밖에 없다. 급기야 방송국에서 비밀리에 추적, 취재를 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 두 사람은 그야말로 평생 밥 해주고, 밥 받아먹는 사이였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 되어 이제 수도원으로 가게 된 신부에게 윤정은 마지막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따뜻한 밥 한 끼 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밥’은 존경과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는지 모른다.
연극을 보고 나니 ‘밥’에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밥은 몸을 살리는 일이요, 관계를 잇는 일이요, 사랑을 다하는 일이다. <논어>에 보면, ‘애지(愛之)인데, 욕기생(浴其生)이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의역하자면, ‘사랑은 상대방이 살기를 바라는 일이다’는 뜻이다. 사랑에 대한 명언 중에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살린다는 말이 무엇일까? 연극 <밥>에 나온 윤정은 신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그에게 밥을 정성스럽게 해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녀간의 육욕을 채우는 일만이 사랑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밥을 해먹이는 일,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마음을 담은 사랑이 아닐까.
신부가 윤정에게는 영의 양식을 채워줌으로써 윤정을 살게 했다면 윤정은 신부에게 육의 양식을 책임져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책임져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이 논어에서 말하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실천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가슴 아픈 유가족들에게 밥을 해먹이는 봉사를 하시는 분들 또한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라 여겨진다. 그들에게 마음 가득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