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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렬 시인 |
밥을 먹으러 갔다가 막걸리 한 잔 곁들이고 ‘밥’ 구경을 갔다. 극단 세이레의 정민자 씨가 연출한 연극. 나는 보리밥을 먹고 갔는데 공연장 입구에는 사발에 쌀밥이 담겨 있는 포스터가 붙여 있었다. 그저 먹고사는 이야기인가. 허나, 내 생각은 빗나갔다.
치매를 앓고 있는 신부와 식(食)복사 이야기였다. 젊은 날 배움터라고는 가본 일 없는 윤정은 신부의 식복사가 된다. 신부와 윤정은 한 살 터울인데, 그녀가 그나마 잘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밥하는 일이다.
성정이 온유한 신부는 윤정을 기꺼이 식복사로 받아들인다. 한솥밥을 먹던 어느 날 윤정은 시집가게 되고, 가자마자 돌아온다. 이에 신부는 시집으로 되돌아가라고 단호하게 다그치지만 그녀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가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잠깐 오해할 뻔했다. 아니, 오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관객이 오해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유도한 의도적 장치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객의 오해가 없다면 이 작품은 아무런 재미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므로.
시아버지의 불호령이 무서워 견뎌내기 어렵다는 등 핑계를 대며 시집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윤정을 보고 내 머리는 곧, 불순한 그림을 그렸다. 신부와 윤정이 혹 금기를 어긴 것은 아닐까, 불미스런 관계 때문에 돌아온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러나 그런 의혹은 기우에 불과했다.
밥 짓는 일밖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윤순을 따뜻한 사랑으로 받아들인 신부, 그것이 천애고아와 다를 바 없는 그녀에게는 한없이 고마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부를 위하여 융숭한 한 끼니 밥을 짓는 일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으리라. 그러므로 그 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다. 그녀의 온갖 정성과 사랑과 혼이 담긴 아름다운 밥인 것이다.
은퇴 후 치매를 앓기 시작한 신부는 교구의 명령에 따라 결국 수도원으로 떠나게 된다. 윤정은 신부를 남몰래 자전거에 태우고 수도원을 향한 둘만의 머나먼 여행이 시작된다. 이미 정신적인 이상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신부는 시차적인 혼란을 겪는다.
신부의 과거와 현재 속에 들어있는 윤순 역은 2인 1역의 극중 장치를 통해 단순하지 않게 처리되었다. 늙은 식복사(양현정 역)와 젊은 식복사(정윤선 역)는 신부(강상훈 역)의 현재와 과거 속에 교차하여 등장하면서 특이하고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얼핏 보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소 이해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흐느적거리는 실루엣처럼 느림 속에 이어지는 길고 고단한 먼 여정에서도 ‘밥’ 이야기는 이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가진 돈이라고는 4천여 원밖에 없는 윤정은 그래도 꼬박꼬박 신부를 위하여 밥을 짓는다.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어느 몹쓸 시골집 주인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하기까지 하는 등 신부를 위한 마음은 여리면서 찰지다.
왜, 윤정은 그런 헌신과 희생을 자처하는가. 참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끝을 알 수 없는 물속처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이 있다.
그것은 아마 배운 것이 없어 스스로 가장 쓸모없는 존재라 여기고 있을 때 진정으로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 사람, 그 인간적인 사랑과 믿음이 그녀의 저 심층에 파문을 일으키며 견고한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신부를 자신의 힘으로 지키고자 한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모두들 윤순과 같은 곡진한 내면을 지녔다면 최근의 세월호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 결국 모든 게 나와는 무관하다는 안이함이 사고의 씨앗이요, 그 검은 열매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어른들의 부조리가 부끄럽고 암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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