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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월 초파일, 화북동 원명선원에 갔었다. 버스에서 내려 별도천 옆길을 걸어가며, 처음 여기 온 후 50년이 지났다는 감회가 밀려왔다.
인연에 의해 1965, 66년, 중학교 2년 동안을 여기서 살았는데, 그 때 법당이 있던 건물은 유치원으로, 베나레스도서관과 금강고등공민학교가 있었던 3층 슬래브 건물의 1층은 유치원 사무실 등으로 바뀌었다. 건너편에 대웅전을 새로 지은 지도 꽤 되었다.
여기 올 때마다 생각 키우는 것은 高銀 시인이다.
그는 서른이 좀 지난 1964년부터 여기에 와 4년간 머물렀다. 절 입구에서 조금 들어간 3층 건물의 길가 방을 그가 썼었는데, 책상이 없이 높이 쌓아놓은 책, 가끔 필기도구를 빌리러 위층에 올라오기도 했다.
2층 선방 옆에는 스님 동생, 신도의 아들 등 내 또래의 아이들 여럿이 살았다. 그는 우리보다 20년 쯤 위였으므로 언강생심 말을 할 수는 없었고, 그 ‘시인’이라는 존재를 우리는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통연 스님 같은 분이 그에게 시를 보이는 소리가 옥상에서 들리곤 했다.
시내에서 많은 이들이 찾아와, 나갔다가 새벽에 술에 취해 사라, 별도봉 옆 공동묘지 사이로 오다 쓰러져 자기도 했다. 훤칠하나 가벼운 그가 혼자 시시때때로 법당이나 공양 간에서 나왔다. 스님들은 그를 ‘고은 씨’라고 했다.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그의 방 앞 휴지통에 있는 신구문화사 원고지에 쓴 에세이 ‘바다’를 나는 가져왔다. 그 때 그를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 젊은 평론가 김현도 있었을까. 있었던 것 같다.
‘집에 갔다 온/3일은 울먹울먹했다/高銀 선생은/삼일 낮밤을 자기도 했고/외출하면 공동묘지를 지나/밤중에 돌아왔다/별도봉에서 주은/부산여중 2년 김일지의 詩로/잠 못 이루고/먹구슬나무 아래서/난생 처음 시를 썼다/처음 먹어본 수정과/다른 애 것의 곶감 하나를/빼 먹고 거짓말을 해/매를 맞았다/학교에서 아이들은/까까중이라 놀려댔고/나를 데려온/스님은 소식이 없었다/스님이 많이 줄어든/어느 날/동갑나기 열네 살 현이/하얗게 죽어/별도봉 옆/작은 바다로 흘러갔다’(졸시 ‘화북에서’)
1976년부터 여기 주지로 있는 석대효 스님께서 고은 시인에 대해 얘기하신다. 작년에 문화예술 당국에서 시비 얘기가 있었는데, 예산에 반영이 안 된 모양이라고. 또 고은 시인이 거주했던 3층 건물이 철거될 예정인데, 이것을 보존할 수 없을 것인가 하는.
고은 시인은 승려 생활 10년 후 환속하여 서울에 있다가 제주로 와서 당시 원명사圓明寺에서 지내게 된다. 몇 년 후 제2시집 ‘해변의 운문집’을 신구문화사에서 내게 되는데, 그 시집의 시들은 모두 여기 원명사에 있으면서 쓴 것들이다. ‘저문 別刀原에서’, ‘묘지송’, ‘이 滿潮에 노래하다’,….
‘濟州滿潮여, 그대는 떠나는 배를/조금 늦게 떠나게도 하고/이제 밤 배들을 돌아오게 한다./어떻게 지킬 약속을 실어오는지,/한 척의 거룻배도 삐걱거리며 돌아오게 한다.//그러나 滿潮여, 그대는 한 물새가 弔喪할 것을 弔喪하게 한다./돛받이에 다친 어부는 키 잡은 손을 풀고/온갖 그물코에 별들을 걸어야 한다./잠깐이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여인이 낳을 것이다.오늘까지 살아온 자는 그대 앞에 있고,/언젠가 오랜 땅보다도 오랜 바다를 소망하리라.….’(고은, ‘이 滿潮에 노래하다’)
그의 문학 생활 60년에서 제주에 머문 기간은 4년에 불과하다. 허나, 여기서 그는 평론가와 독자들이 크게 평가하는 ‘海邊의 韻文集’, ‘濟州歌集’에 실린 시들을 쓰게 된다. 원명사는 그 후 화산처럼 포효해 오고 있는 그의 문학의 모태 같은 곳이 아닐까.
근대,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제주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들어와 머물다 갔다. 계용묵, 이중섭, 장이석, 홍종명, 최영림, 김창열, 변훈, 박목월, 문덕수, 황석영, 한수산, 윤대녕,…. 이 중 고은 시인만큼 오래 머물며 그의 작품 세계의 한 부분을 구축한 이는 드물다.
이제 그의 나이 80이 넘었다. 노벨문학상을 타든 안 타든, 그가 운명적으로 제주에 흘러들어 4년을 머물던 제주시 화북동 별도봉 아래 ‘고은 시인의 옛터’를 어떤 식으로든 기록하고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훗날 이 곳은 크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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