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김용길 시인 |
어느 주말 오후 동네 목욕탕에 갔다. 탈의실에 옷을 벗어놓고 목욕실 문을 여는 순간 탕 안은 온통 시끌북적 난리판이었다. 물 반, 사람 반 초만원이었고 사람 반 중에도 아이들이 반이었다.
어른들 틈에서 아이들은 제멋대로였다. 뿌옇게 더운 김이 숨통을 막히게 하는 가운데 물장구치며 탕 안을 뛰어노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먹먹할 지경이었다.
그런 소란 속에서 머리만 대충 감고 온수탕에 몸을 비집고 앉았다. 옆 사람과 몸이 부딪칠까 싶어 조심스럽게 앉는데, “오셨습니까?” 하고 자리를 비켜주며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만히 보니 정년퇴임을 한 Y 교장이었다.
그 곁에 인형처럼 오도카니 앉아있는 어린아이가 있어 “손자인가요?”하고 물어보았다. 너댓 살 정도의 똘똘한 어린아이는 제 할아버지 곁에서 생글거리며 웃기만 하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물장난 칠 생각도 않고 얌전히 어른 티내는걸 보면서 역시 교육자의 손자이니 다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세대(世代)를 거르는 말을 격세(隔世)라고 한다.(격년(隔年)이라고 하면 한 해(年)를 거르는 것, 순 우리말로 해거리라고 한다.) 가족관계에서 격세대는 손자(손녀)와 조부모 사이를 뜻한다.
격대교육(隔代敎育)이란 말은 여기서 나온 용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돌보면서 예(禮)와 도리(道理)를 교육시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시대 이퇴계 선생의 손자 훈육방식이 그랬다. 관직을 떠나서 향리에 내려간 퇴계 선생은 손자를 엄하면서도 세심하게 가르쳤다. 손자의 과거시험 낙방 답안지를 입수하여 잘못된 항목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스스로 깨닫도록 타일러 주며 교육하였다.
격대교육은 대가족 체제의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인 훈육이었고, 시대나 나라에 따라 가족형태가 다르지만 현대사회에서도 젊은 자녀들이 결혼하고 맞벌이를 하는 경우 손자, 손녀들은 조부모의 손에서 자라나기에 격대교육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예로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격대교육을 받았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의 이혼으로 오바마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인종차별을 뛰어넘는 가정교육을 받았다.
성인 공자(孔子)는 어떻게 자기 아들을 가르쳤을까?
논어(論語) <계씨편>에 보면 정훈(庭訓)이란 말이 나온다. 격세지간인 경우와는 달리 아비와 자식 간의 훈육을 의미지만 교육의 내용과 방식으로는 같은 맥락의 용어이다.
공자의 제자 중 진항(陳亢)이 어느 날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선생님의 아드님이시니까 우리들과는 다른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냐?”
백어가 이르기를
“아버지로부터 따로 배운 것은 없고 다만 언젠가 뜰을 거닐던 아버지께서 나에게 ‘「시경(詩經)」을 읽었느냐?’고 물으셔서, ‘아닙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자 ‘시경을 읽지 않으면 인정과 도리에 통하지 않아 바르게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어 시경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후 또 어느 날 뜰에서 아버님이 ‘예(禮)를 배웠느냐?’고 물으셨을 때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더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자립할 거점을 마련하지 못한다.’고 이르셨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 뒤로 예를 배웠습니다. 이 두 마디 물음을 받았을 뿐입니다.”
여기서 “뜰(정원)에서 가르침”이 곧 정훈(庭訓)이다. 이 말은 곧 가정교육이란 뜻인데, 한 두 마디 물음이지만 그 속에는 자신의 핏줄이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많은 가르침이 내포하여 있다.
가족구성원 윗사람의 엄하고 세밀한 가르침은 한 개인이 책임감 있는 바른 사회인이 되도록 하는 밑거름이 된다. 격대교육이나 정훈은 성장기의 자식(손자)들에게 올곧게 살아가기 위한 기본지침이며 지금 이 시대,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