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관광객을 위주로 조성된 공간들이 늘고 있다. 해변가에 이국 풍 카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제주도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도심보다는 외곽 여기저기에 갤러리와 문화공간들이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타지인들이 한번 들렀다 가는 공간이 아닌, 제주 사람들이 주인공이 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지난달 아라동에 문을 열었다.

제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영화잡지사에 일하다 지난 해 제주로 돌아온 장태영 씨(35), 마찬가지로 제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후 서울과 불가리아에서 도예를 공부하고 2006년 다시 제주를 찾은 장근영 씨(37), 이들 남매가 꾸린 갤러리 카페 ‘팩토리 소란’이 그것이다.

◇ ‘제3의 공간’-새로운 문화·예술이 생성되다

한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집과 직장이나 학교가 아닌, 휴식과 사색, 작업이 가능한 ‘제3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공간은 단순한 장소를 넘어 일상의 변화를 창조해내는 ‘장’이 되기 때문이다.

▲ 벽으로 밖이 내다보이는 저 곳이 '창조적 무명 공간'이다.(왼쪽 위)

장태영 씨는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던 중 우리 사회에도 이 ‘제3의 공간’ 형성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20세기 초, 비엔나에는 ‘제3의 공간’인 600여개의 카페가 있었다. 이 상징적 장소에서 클림트와 에곤실레, 프로이트, 쇤베르크 등은 수시로 교류하며 그들의 사고와 정체성을 확장시켜나갔고 미술, 철학, 건축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학풍과 예술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소란’도 사람들끼리의 만남 뿐 아니라 다양한 전시와 공연 등이 소란법석을 떨며 펼쳐짐으로써 새로운 문화와 예술이 생성되는 공간이다.

오랫동안 구상해 온 이 공간이 설계를 거쳐 완공돼 문을 열기까지는 1년 반이 걸렸다. 창고를 연상시키는 건물 모양, 현무암을 비롯해 제주의 자재를 이용한 외벽, ‘창조적 무명 공간’이라 이름 붙인 한두평의 쓸모없는 공간과 높은 천장.

▲ 복층에 위치한 공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소란'

◇ ‘젊고 새로운 제주작가’ 조기섭 전

장 작가가 ‘소란’에서 작품을 전시할 작가들을 선정하는 기준은 ‘젊고 새로운 제주작가’이다.

‘소란’은 오픈과 함께 제주시 구남동에 거주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는 한국화 작가 조기섭 씨(34)를 초대해 ‘정중동-고요속의 움직임’전을 열고 있다.

▲ 조기섭 작 '돌색 모음'

조 작가는 정적인 한국화에서 벗어나 정적이고 암시적인 곳에 살아있는 날것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조기섭의 (수묵화에서 오는) 대비는 (…) 서로 다르지만 공존해야만 살 수 있는 그런 조화인 것이다. 조기섭은 제주의 기억이 지속되기를 갈망한다. 기억은 현실로 끝나지 않고 미래로 연결되어야 한다. 제주의 돌은 독특하다. 그러나 점점 사라져만 간다. 사라져 가는 풍경은 사라져가는 기억과 같다. 작품에서 화산석을 파고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는 작가가 바라보는 제주의 시간을 표현하는 방식이다.(천석필 이랜드문화재단 학예실장)’

▲ 조기섭 초청전 '정중동-고요 속의 움직임'

‘소란’에는 조기섭 작가가 작년말에서 올해까지 작업한 작품 9점이 걸려 있으며 부분적으로 ‘동물 시리즈’ 등의 작품들로 교체해가며 9월 15일까지 조 작가의 전시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 말馬 의자와 돌담 테이블에서 아라딸기우유 한잔

▲ 복층 구석자리

장태영 씨가 전시 작가나 공연 팀 섭외 등을 맡고 있다면 동생 근영 씨는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고르고 손님을 맞는다. 커피 외에 아라동 딸기밭에서 직접 공수한 만든 ‘아라딸기우유’, 스리랑카 홍차밭에서 사온 홍차, 목련그린티, 베리베리쥬스 등 다양한 음료와 제주팥을 사용한 빙수도 맛볼 수 있다. 음악은 주로 국내·외 모던락과 브릿팝 계열의 인디음악이 흘러나온다. 실내를 채운 테이블과 의자는 돌담과 말을 모티브로 제작했다.

근영 씨는 카페 위층 조그만 공간에 영상실을 꾸몄다. ‘소란’을 찾는 사람들과 영상회를 결성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할 생각이다.

‘팩토리 소란’에서 발아될 새로운 가치와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어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