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숲에서 방아깨비가 뛰어 오른다. 알아서 피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들을 위험에 빠뜨렸을 것이다. 보호색을 띄고 있는 방아깨비 초록이 짙다.
우리들도 나름의 보호색을 지니고 있다. 방아깨비처럼 보호색은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상대에게 위험을 숨기는 일이기도 하다. 위험을 숨기는 것은 자신의 단점으로 인해 타인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함으로 서로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사마귀나 카멜레온은 보호색을 이용하여 먹이를 잡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보호색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문제발생 소지가 많다. 성실함이나 정직함은 굳이 감추지 않아도 드러난다. 아무리 보호색을 띄고 나타내지 않으려 해도.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표출된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지혜는 관찰자의 몫이다.
풀은 야생화, 들풀, 들꽃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약재로 쓰일 때는 약초도 되는 다양함을 가진 풀이 화단과 논과 밭에 있을 때는 뽑아내야 할 대상이 된다. 하지만 풀밭에 있을 때 풀은 주인이 된다.
풀숲은 각종 곤충에게는 안식처나 은신처가 된다. 또한 풀을 주식으로 하는 동물들에게는 맛있는 식사장소가 되고, 풀숲에 몸을 가리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식처도 된다.
우리에게 환경미화를 위해 뽑아내고 잘라내야 할 대상이지만 풀숲은 곤충들의 무대와 삶의 터전이다.
잔디밭의 풀을 뽑아내면서 질긴 생명력에 놀란다. 괭이밥이나 민들레는 잔디밭에서도 뿌리를 잘 내린다. 뿌리를 제대로 뽑아내지 않았을 때 그들은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잘린 뿌리에서 금새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낸다. 질긴 생명력은 자신을 보호하고 풀숲에 사는 많은 것들을 보호한다.
약재로 쓰일 때는 약초가 되는 민들레도 잔디밭이나 화단에서는 침입자가 된다. 아무리 꽃을 아름답게 피워도 잔디밭에서는 침입자다.
민들레 밭이라면 잔디가 침입자가 되겠지만 잔디밭이나 화단에서는 뽑아내야 할 대상이다.
민들레, 괭이밥, 질경이, 까마 중, 쇠비름, 강아지풀, 쑥만이 아니고 풀이라 분류되는 것들은 대단한 생명력을 지녔다. 괭이밥은 봉숭아 씨앗처럼 톡 건드리기만 해도 금새 터지면서 종족번식을 시도한다. 민들레 역시 가벼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뿌리를 내린다. 쇠비름은 뿌리를 뽑아서 던져두어도 통통한 줄기의 양분만으로도 오래 살아남는다. 쑥은 뿌리를 제대로 뽑지 않으면 남아있는 뿌리에서 새 생명을 키워내는데 문제가 없다. 강아지 풀은 또 어떤가. 척박한 땅에서라도 뿌리를 내려 번식을 해야 하기에 강한 생명력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풀숲을 들여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풀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곤충들은 나름의 생존을 위하여 그 풀숲에서 먹이를 찾고 번식을 하고, 살아남기 위하여 보호색을 띈다.
터전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색을 띄는 곤충을 보면서 우리들의 보호색은 우리와 상대에게 어떻게 작용할까 생각해 본다. 보호색의 적절한 사용은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을 보호하지만 외부로 무절제하게 드러난다면 타인에게 해를 가하고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사마귀나 방아깨비, 카멜레온 등은 주변환경의 색깔에 따라 보호색을 바꾼다.
우리가 그들보다 적응력이 뛰어날 것 같아도 종종 주변 환경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갈등을 부를 때가 있다.
곤충들은 자연을 오염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보호색을 사용한다. 그래서 자연과 매우 조화롭다. 색깔이 아무리 화려해도 자연에 융화가 잘 되어 어색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아름답다. 자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온갖 동식물들은 자연을 오염시키거나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보호색은 어떨까. 허영과 허세로 치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새벽이나 늦은 밤이면 풀벌레향연을 들을 수 있다. 돌 틈이나 풀 숲에 몸을 숨기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곤충들은 새벽의 고요를 깨뜨리지 않는다. 자연이 내는 온갖 소리들, 바람소리, 새소리, 파도소리, 풀벌레 노랫소리 또한 고요를 깨뜨리지 않는다.
돌 틈, 풀숲에서 자연이 감싸주는 포근한 보호색을 입고 하루 종일 변함없이 노래하는 풀벌레노랫소리가 아름다운 요즘이다. 성실과 정직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호색은 더욱 아름다우리라.양금희(시인.수필가)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