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우리는 말을 잘 듣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은 바 있다. 선실 안에 계속 대기하라는 식의 거듭된 안내방송을 믿고 따르던 학생들과 민간인들이 결국은 불행한 일을 당했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부정을 위한 부정만을 일삼는 행위가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신의 처한 상황 속에서 무엇이 진정한 가치를 지녔는가를 냉철하게 판단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중국의 후한 때 광무제는 오히려 자기에게 반항하는 인물을 소중히 여겼다. 주당(周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 벼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광무제는 그가 고결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모셔오라고 했다. 그가 명령을 받고 오기는 왔으나, 관직은 한사코 거절했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도 보통으로 수그리는 등, 예절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그의 무례함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광무제는 “예로부터 명군 앞에서는 반드시 말을 듣지 않는 신하가 있기 마련이다.”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비단을 하사하고 임용을 단념했다. 또한 자신의 누이를 송홍이라는 사람과 결혼시키려다 거절당했으나 엄벌에 처하기보다는 너그럽게 이해했다.

이들이 군주의 뜻을 거절한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군주의 뜻을 맹목적으로 따를 수 없는 자기의 어떤 원칙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거나 야합하는 데 앞장서는 요즘 세태에 자그마한 경종을 울리는 고사(古事)가 아닐 수 없다. 이와는 달리 강자의 위세에 놀려 자신의 뜻을 꺾어버린 경우의 이야기도 있다.  

중국의 진나라 때의 이야기다. 시황제가 죽었을 때, 권모술수를 이용하여 실권을 장악한 조고(趙高)라는 환관이 있었는데 그는, 황제 자리를 승계 받게 될 큰아들 부소를 폐하고 그 동생 호해(胡亥)를 왕위에 앉혔다. 그런 가운데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그것은 신하들 중, 자기를 반대하는 자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고는 꾀를 냈다. 우선 그는 사슴 한 마리를 호해왕에게 바치며 말했다. “이것은 말이옵니다.” 그러자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이게 어째서 말인가? 이것은 사슴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좌우의 신하들에게 묻자, 어떤 신하는 사슴이라 하고, 어떤 신하는 말이라고 대답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신하에게 무고한 죄를 뒤집어씌워서 처형했다. 그 뒤로 조고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말을 하는 자가 없었고, 황제는 허수아비가 되었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결국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 성어와 관련된 내용이다. 직역하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우긴다는 뜻이 된다. 누구나 아는 사실을 옳다거나 아니라고 고집하며, 남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을 의미하는 뜻으로 흔히 사용된다. 또는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구 휘두르는 방자한 행동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인다.

위에 제시한 광무제와 조고의 경우를 통해서 보았듯이 실권을 가진 자의 권력 행사 방식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광무제의 정치사상이 덕치주의(德治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조고의 그것은 협잡과 공포정치이다. 조고가 그런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권력 장악 방식이 부조리했기 때문이다. 온갖 권모술수와 증거인멸 등, 모순된 행위를 자행한 그가 어떻게 왕을 받들어 순리적인 정치행위를 할 수 있었을 것인가.

아울러 광무제 당시의 주당과 송홍은 권력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뜻을 당당하게 표현한 걸출한 인물들이다. 반면, 환관 조고에게 부화뇌동해버린 신하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리 멀지 않은 훗날 멸망해가는 나라를 지켜보면서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게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