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나기철

 

지난 주말 수원 남창초등학교에 갔었다. 그 일대에서 열린 제2회 화성행궁 수원시인학교에 초대받아서였다. 수원이 고향인 그 학교 졸업생 최동호 교수가 작년 대학을 정년퇴임한 후, 고향을 위해 마련했다. 평소에는 시창작교실이 열리고 있다.

남창초등학교는 풍광 좋은 팔달산 아래, 정조의 화성행궁 곁에 있는 60년이 된 학교지만, 비교적 큰 규모에 비해 학생 수는 전체 6학급에 한 학년이 10~20명, 전체 100명 정도, 한 때 36학급이었던 적도 있었다.

교실보다 조금 큰 강당에서 개회식이 열렸는데, 남창초교 교장, 남창동 동장을 비롯하여 수원 시장, 시인학교 교장 오세영 시인을 비롯하여 신달자 시인의 강연 등이 있었고, 조별로 나뉜 참가자들이 이승하, 공광규, 방민호, 맹문재, 오형엽, 권혁웅, 유성호, 정수자 등 조장인 기라성 같은 젊은 현역 교수 문인들과 함께 1박 2일간 시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첫날 저녁에는 최 교수의 초등학교 후배가 주지로 있는 대승원이라는 절에서 저자 사인회, 시 낭송, 조별 재능대회가 열렸다. 나도 근래 ‘꽃들의 화장 시간’이라는 시집을 낸 대구의  이기철 시인과 함께 과분하게 ‘젤라의 꽃’을 드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정이 끝난 후에도 초롱에 불 밝힌 그 ‘맛촌공방거리’ 곳곳의 작은 술집에서는 밤 깊도록 참가자와 시인, 비평가들이 어우러져 잔을 부딪히며 시 얘기를 이어갔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있다 고향을 떠난 소년이 대학 교수, 비평가, 시인으로 크게 족적을 이루고, 반백 머리 다시 소년의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와 그 뛰어놀던 거리를 시의 아름다운 등불로 밝혀 놓은 모습이었다.

‘옛날 친가에서 도망 나와 숨어 살던 정희 고모가/은밀하게 나를 손짓하며 부르던/수원 지원 옆 돌담길은 사라져버렸지만/들꽃 같던 입술로 부르던 목소리는 아직도 나에게/ 중학생 시절의 외로움을 불러일으킨다/방과 후 어느 날 무심코 낡은 목조대문을 밀치자/빙긋하게 열린 화령전 마당 작약꽃 밭은/내 영혼에 아름다움을 점화시킨 최초의 불꽃들,/소리내어 꽃을 부른 그 목소리를 찿기 위해/ 먼 바다의 파도를 헤치고 나가야 하지 않았던가’(최동호, ‘수원남문언덕’ 부분)

그 학교 앞길은 서울 인사동 거리처럼 반들반들 고즈넉했다, 단층의 공예품 가게, 카페, 음식점, 작은 술집들이 있고, 짧은 기간이지만 마치 시의 축제를 방불케 했다, 수십 명의 문인들, 수원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온 시 지망생들로 붐볐으니까. 또 그 옆은 정조가 이 곳에 묻힌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해 자주 와, 묵어가기 위해 지었다는 작은 궁궐 화성행궁도 있고 그 부근 수원 성곽도 있어 한껏 운치를 더해 주었다.

수료식은 다음 날 오후 개회식이 있었던 장소에서 열렸는데, 백일장 시상, 특강 등이 있었다. 스스로 한국 시단에서 ‘왕따’라고 하는 오세영 시인은 ‘시는 언어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 쓰여지는 것’이라는 강연을 했다. 그의 책 ‘시 쓰기의 발견’(서정시학)은 시 쓰기의 필독서일 것 같다.

나는 내내 한방을 쓴 이기철 시인과 함께 했는데, 그의 온화한 인품에서 느낀 바가 많았다. 그의 시와 시인의 향기에 이끌려 서울서 달려온 거리의 한 음유시인과 함께 하며, 가곡으로 작곡된 시인의 시 ‘그리운 마음’을 그의 아코디언 반주로 수료식 때 제창을 하기도 했다. 내가 금년 3월 제주 이마트의 현행복 가곡교실에서 첫날 배운 노래였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하루를 건너가고 싶다/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내 아는 사람에게/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이기철,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부분)

거기서 나는 학생 수 많이 작아진 제주남초등학교나 북초등학교, 그 앞거리쯤, 등불들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