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가, 천지동장 김영진

 

얼마 전 관내 사업장 현황자료를 들여다보는 중 쉽게 이해되지 않은 사업명칭이 있었다.

바로 서귀포항 수제선 정비사업이다. 필자는 여기서‘수제선’이란 단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아는 직원이 아무도 없어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는데 수제선(水際線)은 공제선(空際線)과 대칭이 되는 용어로 영역하면 waterline을 말한다.

즉 물과 땅이 닿아 이루어진 선(線)을 뜻하는 것이다. 뜻을 헤아리고 나니 이 사업을 추진하는 행정에서 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를 과연 일반인들은 얼마나 이해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수제선이라는 단어를 봐서는 손으로 제조한 배라는 뜻으로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모 언론사에서 20대 대학생을 대상으로 행정공공용어 이해도 검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응시자들에게 주어진 단어는 공문서와 통지문 그리고 보도자료에 사용된 적이 있는 단어들이었는데 거의가 이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결과는 100점 만점에 평균점수 28점, 특히 어렵게 느끼고 있는 행정용어로는 정답률이 3%에 불과한 호안(湖岸:해안이나 하천가에 침식 방지를 위해 만든 구조물), 집수정(集水井:물 저장고), 연와조(煉瓦造:불에 구운 벽돌로 쌓은 건축 구조물) 등 한자어 또는 일본에서 유래한 용어들이었다.

또한 이들에게 행정 공공용어의 순화가 더딘 이유를 물어본 결과 대다수가 “공무원들이 타성에 젖어 순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어려운 용어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 심하지 않아서”라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지난달 법제처에서는 법률에 남아있는 일본식 용어들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내년에 수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내년 하반기부터 법령에 쓰이고 있는 일본식 용어 37개를 퇴출하고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도(假道:임시도로), 계리(計理:회계처리), 납골당(納骨堂:봉안당), 불하(拂下:매각), 시말서(始末書:경위서), 행선지(行先地:목적지) 등이다.

말이 한 사회의 성격과 권력 관계를 일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공문서나 보도자료 등에 쓰이는 용어나 문장이 어렵다는 사실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의 직원들이 많음에도 개선이 잘 안됨은 타성적으로 젖어든 습관 때문 일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이 말과 글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는 10월 9일은 제568돌‘한글날’이다. 한글날을 처음 제정한 것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있던 1926년의 일이다.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의 선조들은 가혹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끝내 한글을 지켜내었다.

그때 한글을 지켜내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지금 일본어를 쓰고 있을 것이다.

1949년 6월 4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제정·공포하여 공휴일로 정했다. 1970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전면 개정되었을 때도 공휴일이었으나 1991년부터 법정 공휴일인 기념일에서 법정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로 바뀌었다.

2006년부터는 법정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되었으며, 한글날을 전후하여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학교나 민간단체 등에서 한글날을 경축하는 각종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순수한 국어를 살려 쓰는 민족은 번영하고 그렇지 못한 민족은 망한다”라고 이야기한 어느 독일 철학자의 말을 가슴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말이 제대로 뿌리를 박고 있어야 개인의 의무를 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글날을 단순한 휴일이 아닌 우리말 알기 다짐의 날로 인식하고 우리 모두가 훌륭한 우리 한글을 잘 다듬고 가꾸어 나가도록 힘써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