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은미 시인, 본지 객원기자

 

도서정가제 실시로 출판사, 서점, 독자간 의견이 술렁이는 모양이다.

민감한 사항일 수는 있으나 나 같은 사람한테는 그리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시대에 뒤떨어진 말일 수 있으나 애초에 책을 할인해서 구입하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행히 단골 서점이 생겨 그곳에서는 더러 할인을 해주는 경우가 있어 늘 기쁜 마음으로 책을 사오곤 했다. 

서점 나들이는 바쁜 일상 가운데도 나만의 여유를 부리는 소중한 시간이다. 신문으로 보다가, 남이 쓴 글을 읽다가 읽을 만한 책을 추천받으면 메모를 해두었다가 서점에 미리 주문을 해두고 가지러 간다.

다소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책을 구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그 방법을 고수하는 건 덕분에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서점에 가는 일은 귀찮을 수도 있으나 남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서점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신간 도서를 뒤적이는 재미, 오가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재미, 제목만 익히 알고 있다가 마침 책이 거기에 있어 도둑고양이처럼 훔쳐보는 재미, 사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도 아까운 베스트 셀러들을 눈요기 만으로라도 훑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점 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서점 나들이를 취미처럼 즐기고 있다.

무엇보다도 서점 나들이를 하며 얻는 기쁨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같은 제목의 책을 출판사별 비교하며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주로 찾게 되는 고전문학작품인 경우 번역자와 출판사에 따라 책의 내용과 판형, 디자인이 다 다르다.

한 권의 제목에 대여섯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다면 그 책들을 어떻게 비교해볼 수 있겠는가. 물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변별해낼 수 있지만 나로서는 그 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발품을 팔더라도 서점에 가서 직접 보며 고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책을 꼼꼼히 살피다보면 번역이 엉망인 책도 꽤 있다.

그래서 나는 책을 고를 때 전체 구성과 책의 몇 장은 실제로 펴서 비교하며 읽어본다. 어떤 책이 더 자연스럽게 혹은 적절하게 번역되어 있는지 보려고 하는 것이다. 대신 책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수고 없이 어떻게 좋은 책을 고른단 말인가.

서점을 자주 드나들다보니 나에게도 단골서점이 생겼다. 단골서점을 만들어놓으니 이모저모로 좋다. 우습지만 가끔 공짜로도 책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출판사에서 비매품으로 보내오는 책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내가 자주 다니는 서점 주인은 비매품으로 배달된 책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두어 권 얻어 읽을 수 있었다. 이미 나의 직업 또는 독서 취향을 꿰뚫고 있는 주인은 비매품 책을 모아두었다고 나에게 필요하다 싶은 책을 권한 것이다.

공짜로 책을 얻을 수 있으니 어찌나 기쁘든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인정이 고마운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은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는 행운도 있거니와 마음씨 후한 주인이 건네주는 커피 한 잔도 얻어 마실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한 소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도서정가제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