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수석 제주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올해 늦여름 직장을 옮기면서 이전까지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제주에 이삿짐을 내리게 되었다.

제주로 들어오는 날 저녁 보슬비가 내리던 제주항의 분위기만큼이나 낯선 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9월 1일 새 학기 개강과 함께 이곳 제주대학교의 청춘들을 보니 그들의 활기참에 기대어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한 학기가 끝나가는 무렵 지난 3개월을 되돌아보았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학생들의 축제인 ‘아라 대동제’이다.

16년 전 대학에 입학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일 중에 하나가 대학에서의 축제였다.

그러나 IMF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취업만이 대학생의 유일한 목표이자 의미가 되면서 대학은 활력을 잃어갔고, 학생들의 자치행사도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급격히 쇠퇴해갔다.

그 무렵 축제의 성패는 얼마나 유명한 가수를 초청하여 학생들에게 위안이 되었는가에 달렸었고, 그러한 안타까운 대학의 축제문화는 내가 이전에 근무하였던 대학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라 대동제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물론 학교 곳곳에 주점을 설치하고 연예인을 초청하는 것은 여느 대학과 마찬가지였지만, 산책로에서의 공포체험과 같은 아기자기한 행사도 준비하고 교직원들도 대동제에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지역의 상인들도 아라 대동제 기간에는 학교에 들어와서 간이 판매대를 설치하고, 학교 본연의 목적인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학생자치단체와 함께 판매대 공간과 운영시간을 논의하는 모습을보면서 아라 대동제가 제주 지역 전체를 크게 하나로 묶는 축제인 ‘제주 대동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대학이라는 공간은 지역에 적극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학교에서 교육하고 연구하는 학문 중에는 지역과 무관한 분야도 없지 않지만, 제주대학교의 많은 학문 분야는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다른 대학에서 볼 수 없는 ‘해양과학대학’이 있고, 바람 많은 제주도에 제격인 풍력에너지의 개발을 위해 ‘풍력대학원’이 존재하며,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알고 있는 제주 특산물인 감귤의 과학적인 재배를 위해 ‘감귤화훼 과학기술센터’가 있다.

또한, 제주대학교의 경우 지역 출신 학생이 80%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가 다니던 학교에 우리가 다니고 있고, 이곳에 또 우리의 아이들이 다닐 것이다.

베개를 사기 위해 만난 세화 장터의 포목상 아주머니도, 집을 알아보기 위해 만난 부동산 사장님도, 함께 취미생활을 즐기는 동호회 형님도 모두 제대 출신이라며 나를 더욱 살갑게 대해 주셨다.

거의 매주 주말 학교에서는 각종 지역주민들의 행사가 열리고 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강의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역을 위한 대학 그리고 대학을 위한 지역의 성원과 자부심이 공존하면서 우리의 대학과 제주가 더욱 풍요롭게 발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