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길 시인

 

어느덧 매서운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며 겨울이 진정 도래했음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마루에 걸려있는 달력을 문득 보니 이제 이 한해의 마지막 한 장이 남았음을 새삼 깨닫고 왠지 모를 허무함과 더불어 추위가 더 춥게 느껴지게 한다. 아무리 세월이 유수(流水) 같다 하지만 이리도 빠를까.

괜히 저 달력이 밉상스럽게 보일지경이다.

도대체 달력은 어찌 만들어졌을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간과 날짜, 계절의 개념. 이런 편리한 법칙들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고대의 인간들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수십 수백 번 보고 겪으며 하루의 개념을 획득했을 테고, 계절의 변화가 무작위가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진다는 한 해의 규칙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수백 수천 년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불확실한 수렵생활에서 안정적인 농경생활로 넘어갈 수 있었던 데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러한 ‘규칙의 발견’이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발견은 불(火)의 발견이 아닌 시간변화 규칙의 발견 그리고 이어진 달력의 발명 아닐까?

달력의 기원은 로마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100~44)의 명령으로 만들어 졌던 율리우스력(Julian Calender)에서 찾고 있다.

달력의 영어표기인 Calender라는 말은 공표(proclamation)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로마 사제들이 새로운 초승달이 하늘에 나타나는 밤을 새로운 달의 시작일로 공표했기 때문이다.

율리우스력은 1년의 평균길이를 365. 1/4일을 기준으로 만들어 졌다.

그러나 1/4일은 하루로 칠 수 없었기 때문에 4년 중 3년은 1년의 길이를 365일로 하고 네 번째 해는 윤년으로 366일로 정하여 이것을 되풀이하여 사용했다.

카이사르가 달력을 만들게 하였을 때 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1년의 길이가 미소하나마 잘못 계산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계산에 의하면 1일의 정확한 길이는 자신들이 정한 길이보다 11분이 더 긴 길이였던 것이다.

11분이라는 시간은 1년의 세월에 비교하면 별 것이 아니지만, 몇 백 년이 흐른 후에는 며칠의 오차가 생기게 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서기 325년에 이르러서는 4일의 오차가 나게 되었다. 이를 정정하기 위해서 로마 법왕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an 13, 1502~1585)는 그레고리우스력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달력을 1582년에 만들게 하였다.

이렇게 고친 달력은 1만년에 3일밖에 틀리지 않게 됨으로써 실용상 큰 지장을 주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기준이 되었다.

해를 기준으로 날을 세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달(月)이 한번 차고 기우는 것을 날을 세는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한 달, 두 달 할 때의 ‘달’은 바로 밤하늘에 떠오르는 ‘달(月)’에서 뜻이 갈라져 나온 것이다.

동양에서의 달력이라는 것도 그렇게 달(月)의 변화에 따라 날수를 표시했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달을 기준으로 한 달 치씩 엮은 것이 달력이고, 일 년 열두 달을 한 책으로 만든 것이 책력(冊曆)이다.

우리가 지금 쓰는 달력은 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므로 엄밀하게 따지면 일력(日曆) 또는 양력(陽曆)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한해가 간다’ 고 하거나 ‘해마다’라고 할 때의 ‘해’는 태양의 공전현상에 의해 낮에 떠 있는 시간이 점차 길어져서 다시 짧아지는 주기가 1년이므로 태양의 움직임을 가지고 설명한 시간 개념을 나타낸 말이다

시간을 안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쩌면 의식주처럼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엄밀한 자연의 규칙을 삶에 묻어낸다는 행위이다.

허나 달력을 한 장 한 장 뜯어내면서 그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시간의 흐름에 대한 생각보다는 한해의 자신의 일상이 어찌하였는지 뒤돌아보고 후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리고 홀로 웃음도 짓는 회환의 감정이 보다 앞서기도 한다.

삶을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달력에 일상의 감정을 빼곡히 적었다 지우고 그리고 한 장 한 장 감추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