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의 오름은 바라보기만 해도 정겹다.
어딜 가든, 아무데서든 길을 멈추고 고개만 돌리면 가까이 자리한 곳이기에 더욱 친근하다. 등산화에 배낭까지 매고 올라야할 오름도 있고, 그저 생수 한 통만 들고 운동화 차림으로 오를 수 있는 오름도 있고, 심지어 양복에 구두까지 신고서 차에서 내리기만 하면 오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곳도 있다. 형편에 맞게 골라잡아 갈 수 있는 곳이기에 더욱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도내에는 오름 동호회만도 수백 개라고 한다. 굳이 동아리가 아니더라도 가족끼리 벗끼리 오르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으니 이제 오름은 제주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한 이웃임이 분명하다.
제주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한라산과 성산 일출봉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거문오름은 자연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얼마 전, 초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환경학교 체험학습을 위하여 거문오름을 찾았던 적이 있다.
탐방로 입구에는 여러 모임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꽤 부산한 상황에서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이 등산용 스틱을 들고 있었다. 관리사무소의 직원인 듯싶은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서는 스틱을 들고는 입장할 수 없다며 한마디로 입장불가를 통보하는 모습이 보였다. 왜 스틱을 지닐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안내도 없이 일언지하에 퇴짜를 놓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혹스러웠다.
모처럼 작정하고 거문오름을 찾았을 그 관광객에게 제주는 참 매정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곳으로 각인되지나 않았을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그 사람은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일행들도 있었을 뿐더러 분명 예약까지 하고서 정해준 시간에 도착했을 것임을 생각하면 융통성의 문제를 떠나 너무 경직된 사고와 처사에 씁쓸한 생각이 들 뿐이었다.
한라산도 하산 시간을 고려하여 입산통제를 하며 일출봉도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출입이 가능하다. 도내 관광지 어느 곳이든 탐방객이 원하는 시간에 찾아갈 수 있지만 유독 거문오름만큼은 이틀 전에 예약을 해야 함은 물론이고 출입시간마저 통제를 받는다. 게다가 하루 100명으로 제한된 인원 때문에 예약을 한다고 되는 일만도 아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기가 무섭게 국제트래킹 대회를 한다면서 거문오름에는 여러 개의 등반로를 새롭게 개설하였다. 적지 않은 면적을 갈고 닦아 사람 맞을 준비를 해놓고는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이런저런 이유로 인원과 코스를 통제하고 시간마저 통제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늘 보아오던 전시행정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도 세계자연유산관리본부에서는 금년 300만 명의 탐방객 유치를 위해서 해외, 국내, 도내권으로 구분해 상품개발, 기념품 개발 등 연중 이벤트를 추진 분야별 홍보 전략을 수립하고, 주요 거점지 홍보를 강화하는 등 연초부터 집중 홍보를 추진한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자연유산 지역 내의 비공개 동굴의 개방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손 따로 발 따로 노는 오락가락 행정의 일면이 분명하며 설령 부분 공개를 했다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내 없었던 일로 할 것이 어렵지 않게 점쳐진다.
계절에 어울리는 곳으로, 그리고 문득 찾아가고 싶은 곳으로 주말이면 늘 오름을 찾은 지 어느새 8년이다. 그러나 찾아가고 싶을 때 언제나 갈 수 있었던 곳 하나를 잃어버린 섭섭함은 아마도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오름이 멀어지게 느낄 때 제주가 멀게만 느껴질까 그게 두려워진다.<서현석.수필가>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