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절기로,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으며 이날부터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

 

음력으로는 보통 정월에 들며 어떤 해는 정월과 섣달에 두 번 들기도 한다.

 

이럴 경우를 가리켜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이날을 기리고, 닥쳐오는 일 년 동안 대길(大吉)·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며 갖가지 의례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입춘축을 붙이는 집만 가끔 눈에 띌 뿐 큰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입춘이 되면 각 가정에서는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것이 전국적인 의례였다.

 

쓰는 말은 대개 정해져 있으며, 대구(對句)·대련(對聯)·단첩(單帖, 단구로 된 첩자)으로 나뉜다.

 

대구는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기주오복 화봉삼축(箕疇五福 華封三祝)’, ‘문신호령 가금불상(門神戶靈 呵噤不祥)’, ‘우순풍조 시화년풍(雨順風調 時和年豊)’ 등이며, 대련은 ‘거천재 내백복(去千災 來百福)’,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계명신세덕 견폐구년재(鷄鳴新歲德 犬吠舊年災)’ 등이다.

 

단첩은 ‘상유호조상화명(上有好鳥相和鳴)’, ‘일진고명만제도(一振高名滿帝都)’, ‘일춘화기만문미(一春和氣滿門楣)’,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 등을 붙인다.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붙이고,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하여 써서 붙인다.

 

입춘이 드는 시각에 맞추어 붙이면 좋다고 하여 밤중에 붙이기도 한다. 집이 상중(喪中)일 때는 붙이지 않는다.

 

입춘축을 쓸 때 사용하는 종이는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가로 15센티미터 내외, 세로 70센티미터 내외의 한지 두 장을 쓴다.

 

입춘축을 붙이는 곳은 큰방 문 위의 벽, 마루의 양쪽 기둥, 부엌의 두 문짝, 곳간의 두 문짝, 외양간의 문짝이다. 장소에 따라 내용도 달라진다.

 

입춘축은 다른 말로 춘축(春祝)·입춘서(立春書)·입춘방(立春榜)·춘방(春榜)이라고도 한다.

 

 

입춘날 입춘절식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얹고, 민가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었다.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경기도 산골지방(畿峽)의 육읍(양근(楊根),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漣川))에서는 총아(葱芽, 움파)·산개(山芥, 멧갓)·신감채(辛甘菜, 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내어 임금께 진상한다.

 

궁중에서는 이것으로 오신반(다섯 가지의 자극성이 있는 나물로 만든 음식)을 장만하여 수라상에 올렸다. 오신반은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요리로 엄동(嚴冬)을 지내는 동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게 한 것이다.

또 이것을 본떠 민간에서는 입춘날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 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겨났으며, 춘일 춘반(春盤)의 세생채라 하여 파·겨자·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간에 나눠먹는 풍속도 있었다.

 

 

대한을 지나 입춘 무렵에 큰 추위가 있으면, “입춘에 오줌독(장독·김칫독) 깨진다” 또는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고 했다. 입춘이 지난 뒤에 날씨가 몹시 추워졌을 때에는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라고 말한다.

 

입춘 무렵에 추위가 반드시 있다는 뜻으로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말이 생겼고, 격(格)에 맞지 않는 일을 엉뚱하게 하면 “가게 기둥에 입춘이랴(假家柱立春)”고 한다.

 

 

제주에는 농경의례의 한 가지로 풍요를 기원하는 입춘날 굿놀이를 하는 풍습이 있다.

 

해마다 입춘 전날이 되면 무당들이 주사(州司)에 모여 나무로 만든 소(낭쉐)에게 제사를 지냈다.

 

입춘 아침에는 머리에 월계수 꽃을 꽂고 흑단령 의복을 입은 호장(戶長)이 나무소에 농기구를 갖추고 무격들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한다.

 

큰 징과 북을 치며 행진해 관덕정 앞마당에 이르면 호장은 어염집에 쌓아 둔 보릿단을 뽑아오게 해 그 보릿단으로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

 

객사에 이르면 문 밖에 있던 호장은 쟁기를 잡고 밭을 갈고, 아주 크고 붉은 가면에 긴 수염을 달아 농부의 차림새를 한 사람이 오곡 씨를 뿌린다. 이어서 초라니 광대처럼 채색한 새 탈을 쓴 다른 한 사람이 등장해 곡식을 쪼아 먹는 시늉을 한다.

 

또 두 배우가 여자 가면을 쓰고 처첩이 투기하여 다투는 시늉을 한다. 남편 역할을 맡은 광대가 거짓으로 말리는 척 하면 관중들은 박장대소했다.

이런 모습은 마치 꼭두각시놀음과 비슷하다. 이는 탐라시대, 탐라왕이 몸소 백성들 앞에서 밭을 갈아 풍년을 기원하던 풍습이 전해 내려온 것이라 한다.

 

제주시와 제주민예총은 입춘굿의 전통을 이어받은 ‘탐라국 입춘굿’을 해마다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 입춘굿은 오는 3일부터 5일까지 제주목 관아를 비롯한 원도심 일대에서 열린다.

 

 

제주 사람들은 입춘날 바람이 불면 그해 내내 바람이 많고 밭농사도 나쁘다고 믿었다.

 

입춘날 입춘축을 써서 사방에 붙이면 그해 만사가 대길하나, 이날 망치질을 하면 불운이 닥친다고 생각했다.

 

입춘날 여인이 남의 집에 가면 그 집의 논밭에 잡초가 피어난다고 믿어 특히 조심했다.

 

또 이날 집안 물건을 집 밖으로 내보내면 그해 내내 재물이 밖으로 나가게만 된다고 믿어 아무에게나 물건을 함부로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