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심한 열병을 앓았다. 며칠 동안 열이 펄펄 끓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 이르렀다. 아픈 것이 다 나으면 학교에 가라며 아버지께서 만류 하였지만 입학식에 참석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기대와 처음 입어보는 하얀 칼라가 달린 교복이 그렇게 예뻐 보이고 새로운 친구들의 얼굴이 궁금하여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쳤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집을 꺾지 못하고 입학식에 입고 갈 교복에 하얀 칼라를 손수 바느질해서 달아 주었다. 따뜻한 물에 수건을 빨아 세수조차 힘겨워 하는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걱정에 가득 찬 얼굴로 배웅을 나온 아버지를 뒤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입학식에 대한 기억에는 하얀 칼라를 손수 달아주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시던 아버지의 따스한 모습이 함께 한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직접 말씀으로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칼라를 달아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딸의 얼굴을 말없이 닦아 주던 그 손길에는 아버지만의 사랑의 표현 방식이 들어 있었다. 버스정거장까지 따라와 안타까움과 걱정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던 아버지의 눈 속에도 숨길 수 없는 사랑이 들어 있었다. 사랑이 말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종종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모르는 이에게 장기를 기증하여 새 삶을 살게 하는 힘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힘이 나은 결과일 것이다. 또한 낯 모르는 이들에게 조건 없이 마음을 모아 전하는 기부나 이웃 돕기는 우리 사회의 따뜻한 면을 들여 다 볼 수 있는 사랑의 또 다른 실천 방법이다. 부성애나 모성애를 포함한 사랑의 힘은 기적을 불러 일으킨다. 꽃이나 나무에게도 칭찬을 해주면 무럭무럭 잘 자라지만 부정적인 말을 계속 들려주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식물이나 동물, 인간에게 미치는 사랑의 에너지가 매우 특별한 힘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