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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 고갯길
<김하선>  |  webmaster@jeju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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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1.29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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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빛과 물빛이 시릴 만큼 푸른 날이다. 해안동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한 지 일 년이다. 봄날 연하고 보드랍던 잡초가 요즘 들어 누르스름하다.

며칠만 더 있으면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들겠지. 바람은 시원하고 구름은 지평선에 누웠으니 절로 고향 생각이 난다.

이 좋은 계절에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라는 생각에 젖어든다. 머문 듯 흐르는 것이 세월이지만, 산이나 나무는 항상 그곳에 있으면서 쉬지 않고 변하듯 우리네 생도 나날이 새롭다.

인생은 때로는 구름이 되고, 때로는 예기치 않았던 사고로 돌풍에 휩쓸면서 대자연과 맞물린 삶이라고나 할까.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이런 생각을 하며 텃밭이라고 하기엔 좀 큰 편이고 밭이라고 하기엔 좀 작은, 한 200 평쯤 되나보다. 여기서 일하는 자체가 즐거움이고 행복의 시간이다.

오늘처럼 청아한 날은 호미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 하나도 정겹다. 이 호젓한 곳에서 나는 부자가 되었다. 내가 말하는 부자는 돈과 재산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마음의 부자다. 눈길 닿는 곳마다 오곡백과가 만발하니 이보다 더한 부자가 어디 어디 있으랴.

넘실대는 이삭, 잘 영글면 베어낸다. 이와 매한가지로 사람도 어려운 역경에서 아이들 다 키워 분가시켜 좀 살만하면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가 있다. 이래서 인간은 한치 앞을 모른다고 했던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일까. 하고 자신에게 물어볼 때, 막막한 물음이다.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다. 나는 최후에 자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걱정된다. 어머니란 이름은 자식들에게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인가 보다.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이 자갈밭을 일구는 것도 꼭 수확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매사에 성실한 나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픈 마음이다.

세상 떠난 어머니가 그립다. 그 옛날 어머니가 밭에서 일할 때 나는 항상 짜증을 부렸지. 나랑 놀아주지 않는다고, 이제 지천명 고갯길을 넘기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린다.

늘 부지런한 어머니가 계셨기에 우리는 끼니 걱정 안 하고 평범한 생활을 하였나보다. 나, 이제는 어머니를 닮아가며 그 자취의 의미를 되새김한다.

어머니의 흔적이 나의 마음에 눈을 뜨게 한다. 작물 한 포기가 우리에게 겸허와 순응을 가르쳐 주고 있다. 자연의 변화란 곧 우주의 섭리이다.

우리들의 생은 고독하면서도 영롱한 이슬처럼 이 생에 반짝 맺혔다가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땐 엄청난 충격을 받기 때문에 평정심을 잃어버린다. 그럴 때 어떻게 자신을 위로 할까. 아무래도 스스로 자신의 긴 여정을 슬며시 펼쳐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참되고 순수한 생을 살았다고 자부할 때, 그는 충격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평정심을 찾고 안개가 되어 초목을 적셔 주듯이, 누군가 나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기꺼운 맘으로 내 작은 손을 내밀고 싶다.

이런 맘으로 고즈넉한 텃밭에서, 덧없는 세월의 애환과 갈증을 평정심으로 일궈 나간다. 그런데 나는 지천명의 고갯길에 제대로 들어 설 그날은 언제쯤이려나.<김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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