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의 폭설로 제주도가 약 44시간 동안 고립되면서 도내에선 이색적인 풍경들이 여럿 연출됐다. 최대 9만여명의 발이 묶이면서 제주공항은 난민촌 얘기를 들었고, 도민들이 자발적으로 빈방까지 내주는 등 따뜻한 손길로 감동을 자아냈다. 항공사나 제주공항공사의 일부 미숙한 대처는 질타의 대상이 됐다.

 

폭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23일부터 제주공항은 밀려드는 인파로 혼돈의 장이 됐다. 항공편이 잇따라 결항되다 급기야 운항중단이 선포되면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관광객들은 2박3일간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했다. 종이상자나 신문지를 바닥에 까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일부에선 텐트를 쳤고 제주도가 주관해 마련한 스티로폼 침대로 바닥의 냉기를 피했다.

 

운항중단이 길어지면서 관광객들은 모든 곳을 수소문해 숙소를 찾았다. 공항 주변 펜션 등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함덕이나 성산 등 시외권은 물론 서귀포까지 돌아가는 경우도 속출했다.

 

도민들은 ‘제주맘’ 다음카페와 제주패스 페이스북 등을 통해 빈방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중국인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공항까지 굳이 와서 마중하고, 다시 공항까지 태워다 주고 배웅하는 정성에 감동했다는 사연이 인터넷 공간 곳곳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공항 일대 전체가 교통혼잡을 빚으면서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만 30분 이상 걸려 ‘택시요금 10만원’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관광객들이 비행기표 예약을 위해 줄을 서면서 제주공항 3층 출발층 전체에 수십m의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도 나왔다. 항공사마다 대기표 예약 방식이 달라 일부 관광객들은 고성을 지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의정부시에서 왔다는 임재창 씨는 “25일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기다렸다 겨우 대기표(840번)를 받았다. 6일 오전 7시 다시 와서 기다렸다 오전 10시30분에 ‘(예약할) 때가 되면 알려주겠다’는 말만 들었다”고 허탈해했다.

 

 

제주공항공사의 미숙한 대처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24시간 운영과 이에 따른 난방비 등을 놓고 ‘규정’을 운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안내를 제주관광공사와 제주관광협회에 떠맡겼다는 얘기도 나왔다. 공항공사 측은 “협의 과정에서 와전됐다. 항공 일정에 대한 문의는 항공사 쪽의 업무”라고 해명했다.

 

거리 풍경도 예년과 달랐다. 차가 미끄러지는 탓에 그냥 거리에 세워두고 갔지만 사흘간 폭설이 이어져 도로 곳곳에 주차된 차가 목격됐다. 며칠새 높게 쌓인 눈에 차가 파묻혀 자신의 차를 찾아 기웃거리는 운전자도 있었다.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25일에는 공항에서 대기하던 임산부가 하혈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나 큰 문제는 없었다. 도민 A씨는 시아버지가 사망했지만 공항이 폐쇄되면서 장례식장에 시신만 안치해야 했다.

 

제주도는 이번 폭설로 인한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대두된 문제점과 아쉬움이 남는 분야를 보완해 국제관광도시 제주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