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강요배(64)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 80여 점을 모은 전시가 열린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초대기획전 ‘한국현대미술작가 강요배-시간 속을 부는 바람’ 전시를 15일부터 7월 10일까지 연다.

전시 개막에 앞서 12일 제주 도립미술관에서 도내 매체와 인터뷰를 가진 강요배 화백은 ‘4·3의 화가’, ‘민중화가’로 불리는 것에 창작자로써 저항한다고 강조했다.

또 강 화백은 탁월한 그림 한 점이 자신을 대표하는 것도 거부했다.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바다에서 소금이 만들어지듯 ‘앙금’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 화가 강요배가 스스로 말한 앞으로의 그림이다.

(이하 인터뷰 전문)

▲ 강요배 화백.

■유년시절 작품도 전시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 뛰어나게 잘 그리는 아이였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진 않는다. 그 당시 그림은 소양과 재주인 것이고, 60년 동안 살면서 계속 형성해 나가야 한다.

한 점의 그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속 (그리는 행위를) 이어가는 것 아닐까. 요절한 천재는 인생을 살아보지 못하고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인생이 담기지 않은 예술이 어떤 것이고, 천재는 어디서 제재를 따올 건지 질문해 볼 수 있는 것 아닌지.

■이번 전시에 앞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 60년간의 작업을 하나로 모을 기회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한 ‘짓’을 보니 나름대로 좋다.

10대는 ‘학습시기’였다. 모방도 하고 사물에 대해 말도 배우고 형상도 그려보는. 20대는 좀 더 전체적인 개념으로 확장하는 시기였다. 삶과 죽음, 신, 선과 악, 어둠 등의 큼직한 상징들에 대한 개념을 잡았다. 그 당시 삶의 연륜이 작다보니 막연하고 개념적이었다. ‘블랙홀’ 같이. 노자 사상의 ‘유연한 세계’나 장자의 ‘나비’처럼 막연한 삶과 덩어리를 생각한 것 같다.

30대는 구체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 하나씩 바라보고, 사람들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40대는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것에 감히 도전하기 시작했고, 그 결론이 4·3 연작그림 ‘동백꽃 지다’다.

40세 쯤 제주도 귀향해 제주도의 자연을 그리기도 하며 주로 외부적 대상으로 다뤘다.

50~60대는 물, 바람, 나무, 등 구체적 사물보다 내 마음의 리듬을 표출하는 게 중요했다. 지금의 내 작품의 경향이 싱거운 듯하다 볼 수 있다.

50대 후반을 넘어서니 말은 뒤로 가고 기운들이 전면화됐다.

그럼, 그 다음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아직도 침전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면 아직도 더 가라앉혀서 진정한 ‘앙금’을 만들어야 한다. 더 단순화시키고 더 강력한 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은 과제인 것 같다.

■지금 40년 전 열린 첫 개인전을 회상해 본다면.

1976년 관덕정 옆 대호다방에서 20대 때 작품들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여러 가지 상징과 추상적인 것을 썼다. 당시 제주는 일반적으로 사실풍의 그림들이 주를 이뤘는데, 내 추상적인 작품 경향이 상당한 말썽을 일으켰다. 밉보인 거지. ‘니 멋대로 그림이 되냐’는 말도 들었다.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얘기 안 하지만. 20대 중반에 나는 전체 요지와 총론을 따라 세상을 파악하려 했다. 성질이 급한 거지. 내용 없는 고민 같은 것이다.

■4·3 연작 그림 ‘동백꽃지다’ 발표 후 탄압이나 압력 없었나

시대를 잘 만나서 그런 것 없었다.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봤다. 영웅이나 투사에 편협하게 집중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나를 들여다보면서 각 단계마다 골고루 표현하려 했다. 유족회가 항의도 처음에는 있었지만 이제는 지나간 일이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 다루면서 고뇌가 상당했을 것 같다.

(고뇌도) 30대 후반에만 있었던 것이지, 그 이후에는 그 것에만 얽매이지도 않는다. 파란하늘에 토끼, 뭉게구름, 시원한 바다 바람, 야생화 그런 것을 충분히 즐긴다. 매번 제사 지내듯 슬픈 것만 생각하면 그것도 이상하지.

■어두운 역사, 서사적인 그림만 그리고 있다고 오해하는 분들에겐 섭섭함도 있겠다.

그렇다. (기억된) 그림들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 작품들을 펼쳐보면 알듯, 내 고민의 방향들은 역사 하나만 본 것은 아니다.

그럼 이것은 ‘퇴각’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름대로 이렇게 가야하는 길이 있다. 많은 말과 설명보다도, 그림은 맛을 만들고 압축하는 것이다.

■1972년 자화상도 전시된다. 지금도 자화상을 그리나?

10, 20대, 30대에는 그렸다. 성장기에는 자기중심적이었다. 40대 후반 쯤 되면 물러서서 세상과 역사도 생각하고. 나이에 따라 관심의 폭, 대상이 조금씩 달라진다.

■하고 싶은 말 있다면.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가 150년 동안 서세동점(서양이 동양을 지배한다는 뜻)의 시대에 살았다. 서울, 파리, 동경을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땅과 역사를 외면하고 150년을 살았다. 그런데 꼭 그런 시대가 계속 되어야 하나.

‘지금도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 꼭 뉴욕이나 파리로 가야 할까? 그곳에는 뭐가 있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탐구해야 하는 게 있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제주도에 돌아온 이유도 ‘제주도를 학교로 삼아서 예술을 해보자’ 생각에서다.

그리고 이것이 조금 먹혀들어가는 기분도 들고.(웃음)

전적으로 우리가 당한 일, 본 것, 우리 땅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시대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한다.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소재, 주제는?

역사, 삶, 자연을 가지고 앙금을 만들어내야 한다. 앙금은 형식적의 완결성을 말하는데, 지금은 그것이 좀 모자라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바다가 소금이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변형이 돼야 한다. 형태와 말은 사라지고 묘한 맛과 향기만 남는 것. 누구든지 맛보기 쉽게끔 만드는 것이다.

■후학 양성의 계획은.

전혀 없다. 그림은 자기가 직접 하면 된다. 등단제도니 수상제도니 불필요한 것 같다. 무조건 하면 된다. 누구든지. 학교를 다니면 오히려 망친다. 옛날에 학교에서는 석고상을 그렸는데, 그림 속 사람들이 모두 서양식 얼굴이 됐다. 자기 얼굴은 그릴 줄도 모르는 아이들이 만들어 진 것이다. 그런 교육은 필요 없지 않을까 싶다. 이건 교육하는 사람들한테는 큰 욕 얻어먹을, 밥줄 끊는 이야기지만.

■청년작가에게 당부하자면.

내가 무슨…….(고민하다가) 그림을 그려보면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걸 알 수 있다. 그걸 잘 들여다 봐야한다. 자기가 자기를 교묘하게 속이면 그건 일단 넘어가는데, 그러면 발전이 없다. 솔직하게 자기가 해놓은 ‘짓’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 둘러대면서 ‘10년 동안 했는데 이정도 하면 됐지 뭐. 저 사람이 모르는 것이 문제지 내가 못 그리는 게 문제가 아니야’라는 식으로 자꾸 알리바이를 만들고 핑계를 대게 된다. 늙으나 젊으나 대부분의 작가들이 마찬가지다.

■40년간 작품을 한 전시로 펼쳐보이게 된 계기는.

사실 삭제를 잘 안한다. 좋은 것만 남기는 게 아니라 잘못된 것도 그냥 올리고. 하나의 철학적 태도인데, 탁월한 한 점의 작품으로 날 대표하려고 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내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놓고 짜서 한 번 보자. 그러면 거대한 대하드라마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럼 예술의 길, 삶의 길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노림수가 있었다.

이것은 신비화된 서양식의 천재 개념하고는 반대 개념이다. 평범한 사람도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누구든지 그림을 탐구할 수 있는 것이지, 특별한 소수의 천재들만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중국에서 최고로 치는 화가 제백석도 60살까지 비슷한 습작만 했다. 90살까지 작품을 하면서 장기적으로 보는 것은 잠시 반짝하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조급할 이유 있나. 개념만 바꾸면 된다.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 유지하면서 슬슬 하면 되겠다.

■강요배라는 이름 석 자.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

자아가 어디 딱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형성해 나가는 것 같다. 다르게 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기를 확인해 나가가는 과정. 미지의 영역이 인간의 자유를 정의하는 것 같다. 아직 더 갈 여지가 있으니 내가 거기를 갈 자유가 생기는 거지. (인생은) 나를 만들어가면서 확인하는 것. 자기 스스로의 조각을 만들어 내가 돼 가는 것이 ‘형성해 나가는 작업으로써의 자아’다.

■바람의 화가, 4·3의 화가, 민중화가로 호칭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카피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표현을 잘 만드는데, 창작자는 그 것에 포획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한다. (나에게) 매겨진 의미에 대해 저항을 할 수 있어야 된다. 열려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40세에 제주 내려온 계기 있었나.

그 때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가 불었다. 광주 비엔날레니 모든 것이 세계화로 전환할 때라. 귀향한다는 것은 거꾸로 가는 청개구리 짓인데, 그걸 알고서 내려온 것이다. 답은 여기(제주)에 있지.

우주중심론이 있다. 옴파로스(라틴어로 ‘배꼽’, ‘세계의 중심’을 뜻하는 단어)라는 것을 어디 정하는 데에 달려있다. 선망의 대상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면 된다. 나는 그 곳이 제주다. 다른 데는 전혀 부럽지가 않다.

이제는 (제주) 프라이드가 높아지고 있어 옛날처럼 주눅 든 사람도 없지 않나. 이런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