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이 다가오니 생각나는 이가 있다. 학부 시절 나는 이원 시인에게 시를 배웠는데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시인은 지인 중에 교사가 있어 어느 날 그녀가 있는 교실을 찾아갔다. 그녀는 어린 학생들이 책상 위에 해놓은 낙서를 지우개로 지우며 “내가 이런 짓까지 한다”며 선생 역할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시인은 이 일화를 들며 “아이들이 낙서를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또 낙서할 수 있도록 책상 위 낙서를 지워주는 일이 선생이 해야 할 덕목”이라고 전했다.

 

그는 “스승은 제자들의 흠을 다독이기 위해 기꺼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날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진짜 스승을 만난 적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생과 학생이란 역할(직업) 관계였지 스승과 제자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진짜 좋은 스승은 제자를 꾸짖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열어주는 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선생은 있지만, 스승은 없다”는 말이 있다.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전하는 이를 일컫는 말로 ‘스승이 없다’는 것은 창의적 사고를 거세하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대한 책임이 선생들에게도 있다는 뭇매일 것이다.

 

새 학기 “이 중에 절반은 낙오자다”라는 첫인사 대신 “너희는 존재 자체로 가능성”이라고 말해주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능동적으로 삶을 대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원 시인처럼 제자에게 무릎을 꿇고 열심히 지우개질 해주는 스승들도 많을 것이다. 좋은 스승이 많아지면 요즘 항간에 떠도는 “학생은 있지만, 제자는 없다”는 말도 무색해지지 않을까. 존경하는 이를 만나면 인간은 누구나 온순해지는 기질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