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날씨가 확 달라졌다. 겉옷을 벗어던지는 일은 물론, 짧은 소매를 입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벌써부터 냉방기를 돌리는 곳도 적지 않다. 한낮에 조금만 걸어도 땀이 솟아 시원한 음료수가 그리워진다.
아이가 중간고사를 치렀다. 중학교에 진학해 맞는 첫시험이라 긴장했는데, 무사히 치러 대견했다. 시험을 마친 아이와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훌쩍 자란 아이의 키가 새삼 눈에 띄었다.
아직 아이가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아 나온 참에 사고 가자고 의견을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왜 망설이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마트 폰이 보편화되면서 아이들의 세계에도 자연스럽게 SNS가 자리 잡았다. 언뜻 보면 학업과 학원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또래와 교류하는 좋은 기회일 것 같은데,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이 큰 게 사실이었다.
학교 폭력이 처음부터 주먹다짐으로 시작되는 경우는 드물다. 주로 사소한 문제가 일으킨 말다툼에서 시작해 따돌림과 언어폭력 등으로 이어진다. 이 단계에서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보다 숨기려는 경향이 있어 사태가 악화된다.
특히, 언어폭력의 경우, SNS를 통해 ‘사이버불링’이라는 사이버폭력으로 지능화되기 쉽다. ‘사이버불링’이란 SNS나 스마트폰 메신저, 휴대전화 메시지 등을 통해 특정학생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피해자를 초대한 후 단체로 욕설을 하며 괴롭히는 ‘떼카’, 방을 나가도 계속 괴롭히는 ‘카톡감옥’, 채팅방에 피해학생을 초대한 뒤 한꺼번에 나가버려 피해학생만 남게 하는 ‘카톡방폭’등이 그 예다.
모두 휴대폰을 이용해 손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놀이나 일상의 소통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폭력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대부분 SNS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지 못해 무분별하게 벌어진다.
실제로 이웃에 사는 여고생이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초코파이 하나를 건넸다가 ‘창녀’라고 소문이 돌고, 학교를 옮기게 되는 일을 겪었다. 속상해하는 학생의 엄마와 이야길 나누며, 같은 엄마로서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열일곱 나이에 과자 하나를 이성에게 건넨 일이 얼마나 큰 흉이라고 그런 언어폭력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걸까?
얼마 전에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가지고 인터넷 게시판이 시끄러웠다. 여러 의견들이 오갔고, 응당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중에 가해자의 원인을 여성혐오라고 지적하는 여성을 향해, 성적 조롱과 모욕적인 악성 댓글을 남기는 일부 몰지각한 남성들이 있었다.
성차별 발언이라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토론이 뭔지를 이해 못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런 자리엔 입장하지 말라는 말이다.
발언하는 사람을 향한 개인적 비난과 악의적 발언은 삼가야 한다.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잘못에 대한 인식과 죄책감을 잊어도 되는 건 아니다.
사이버 상에서의 언어폭력 수준이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이제는 미온적 대응방식을 버려야 한다. 친구끼리니까 적당히 넘어가고, 아직 어려서 봐주고, 술자리라서 웃어버리는 이런 일은 그만두자.
들어서 기분이 불쾌하다면 이미 시작된 것이다. 배려가 없는 대화는 언어가 아니라 폭력이다. 우리 모두가 적극적인 정화와 실천을 통해, 아이들과 여성들이 맘껏 대화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자.
<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
